'장생탄광' 83년 만에 유전자 조사 착수…피해자 측 "136명 전부 해야"
갱도 수몰로 조선인 136명 사망…정부, 유족 대상 DNA 검사
"정부가 할 일, 민간이 해왔다"…유족들, 한일 공동조사 촉구
- 한지명 기자
(서울=뉴스1) 한지명 기자 = 정부가 83년 전 일본 장생(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로 숨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136명을 찾기 위한 유전자 검사에 착수했다.
오는 6월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예정된 4차 수중조사를 앞두고 유해가 실제 발굴될 경우를 대비해 정부는 사전 DNA 확보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2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장생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의 유족을 대상으로 5월 2일까지 유전자 검사 신청을 받는다. 이번 조치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에 따른다.
장생탄광 참사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지하 갱도에서 발생했다. 갱도 누수로 시작된 수몰 사고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총 183명이 사망했지만, 희생자 수습과 진상 규명은 지금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장생탄광 유족을 특정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일본 전역의 피해 신고자를 광범위하게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에는 장생탄광 희생자 136명을 기준으로 각 희생자의 유족 여부를 확인하고 검사 대상자를 특정하기 위해 가계도를 작성할 예정이다.
행안부는 유해가 아직 발굴되지 않았지만, 희생자로 신고된 유족들이 존재하는 만큼 유전자 정보를 미리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족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고려, 향후 유해가 뒤늦게 발견되더라도 신원 확인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조치다.
피해자 유족 측은 정부 조치를 늦은 대응으로 보고 있다.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 단장인 최봉태 변호사는 "늦어도 너무 늦다는 게 유족들 입장"이라며 "DNA 조사는 일본이 훨씬 먼저 했고, 관련된 법도 일본에서는 먼저 구비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유골 관련 조사는 유족 내 소수만 했다면 이번에는 136명 모두에 대해서 조사를 해놓는 게 좋겠다"라며 "탄광 조사 역시 한국과 일본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하는데, 그동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이 대신해왔다"라며 "이번 대선 후보자들에게도 질의서를 보내 유해 발굴에 대한 입장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내에서도 장생탄광 진상규명과 유해 발굴 필요성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일부 이어지고 있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장생탄광 수몰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유해 발굴·봉환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해 발굴에 대해 그동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일본 정부도 최근 들어 관련 논의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지난 4일 도쿄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유해 발굴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방안과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달 22일 일본 국회에서는 장생탄광 유해 발굴을 주제로 한 간담회가 열린다. 일본 시민단체 '장생탄광의 물비상(水非常)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과 후생성이 참석한다.
최 변호사는 "유해 발굴이 민간 주도로만 이뤄지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 공식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간담회 현장에서 해당 요구를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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