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사람에게 불충한 '항명' 꼬리표, 신속한 재판으로 떼줘야
'국회의원 끌어내라' 지시에 항명한 조성현·김형기
부당명령 거부 인정 않는 군법…尹지시 부당했단 신속 결론 필요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넌 나에게 항명했다. 난 널 더 이상 군인으로 보지 않는다."
2019년 초여름, 임기제 부사관이었던 필자가 군의 목숨과도 같은 지휘계통을 거슬러 직속상관보다 높은 상급자에게 '마음의편지'를 쓴 대가는 '항명'이라는 낙인이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한국전쟁 전사자를 수습하던 중 대대장 지시로 부대로 복귀해 행정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그간의 경험을 살려 현장에 남아 조직에 기여하고 싶다'며 대대장보다 높은 단장에게 소원을 접수했다.
비록 현장에 남을 수 있었지만 대대장은 오랜 시간 필자의 경례를 무시했다. 선배 부사관들의 꾸지람은 덤이었다. 전쟁통엔 즉결 처분도 가능한 죄를 범했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당시 22살이었던 필자에게 '항명' 꼬리표는 공포 그 자체였고, 이후 군 생활은 끊임없는 압박의 나날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휘말려 항명이란 주홍글씨를 뒤집어쓴 군 지휘관들은 안줏거리에 불과한 필자의 '헤프닝'과는 비교도 못할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 감히 짐작한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누군가는 저에게 항명이라고 한다. 저는 항명이 맞다."(윤석열 내란 혐의 2차 공판 증인 김형기 중령 발언)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형기 특전사 1특전대대장(중령)과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대령)은 비상계엄 당시 국회로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수차례 받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반평생의 군생활을 걸고 항명을 단행한 이유는 간명했다.
김 중령은 군이 자신에게 국민과 국가를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고, 상급자의 명령이 이에 부합할 때 비로소 복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조 대령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지시임을 알면서도 왜 지시했는지 모르겠다며 부당한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항명에 국민 다수가 칭찬과 격려를 보내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 항명의 꼬리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군형법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아 두 사람의 항명이 정당했다는 방증이 필요하다. 윤 전 대통령 등 내란 혐의자들의 지시가 부당했다는 결론이 하루빨리 나와야 하는 이유다.
재판부가 올해 연말까지 총 28회의 공판 일정을 지정해 신속한 재판 진행의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38명이고 윤 전 대통령 측에서는 재판 초반부터 탄핵 소추됐던 인사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맞섰다. 거대 야당의 탄핵 남발을 계엄 정당성의 논거로 주장할 전략을 내비치면서 지난한 법정 싸움을 예고한 셈이다.
재판을 이끄는 지귀연 부장판사는 두 지휘관이 윤 전 대통령 재판의 증인으로 나올 때마다 감사와 존중을 표했다. 그 감사한 마음을 신속한 재판으로 보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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