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란 걸 모르겠어요"…정상 가족들 속 고아들의 어린이날
보육원·쉼터 출신 청소년 및 청년 30여 명 "고아원 철폐" 외치며 행진
"부모 찾을 권리"와 보호·지원 촉구…내일 국회서 법률제정 토론회 개최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아이가 기차 탔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아직 아이는 어린이날이 어떤 날인지 잘 모르지만 엄마 아빠와 색다른 곳에 와서 노는 게 즐거울 것 같아요"-경기도 하남시에서 온 40대 박 모 씨.
어린이날을 맞은 5일 서울시청 앞 잔디밭(서울광장)에서는 어린이날을 기념해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커다란 빈백에 기대어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한 아버지의 뒤로는 해리포터·인어공주 등으로 분장한 아이들이 놀이터를 뛰놀며 "다음엔 이것 타자"고 엄마의 손을 끌었다.
같은 시각 서울광장에는 초록색 프랑켄슈타인 가면을 쓴 사람 3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의 손에는 '부모와 함께할 수 없는 고아에게 어린이날은 또 다른 상처'라는 팻말이 들려 있었다.
전북, 수원 등 전국 각지의 아동 청년 복지시설과 쉼터 등에서 모인 고아들은 오전 10시쯤 용산 가족공원에서 약 7㎞를 행진해 12시 20분쯤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이사장은 "고아들의 현실은 자신을 창조한 과학자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에서 외면당한 프랑켄슈타인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고아는) 부모에 의해 버려지고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돼선 국가로부터 버림받았고, 사회에서 외면당한다"라며 "누구도 혼자 태어나지 않았듯, 누구도 혼자 남겨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장과 행진 참여자들은 "모든 고아원은 제2의 형제복지원"이라며 "반인륜적인 집단시설 고아원을 철폐하라", "아이를 상품처럼 다루는 고아 산업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청소년쉼터에 자라난 A 씨(28·여)는 "평범함이란 것을 모르겠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옷 한 벌조차 제공해 주지 않는 쉼터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로 악착같이 학비를 벌어 25세에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그는 오는 12월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설렘보다는 막막함을 드러냈다.
A 씨는 "취직하고 생활비 마련을 해야 하는데 나 혼자밖에 없다"면서 "대학생이 아니면 집세 이자도 많이 나간다"고 걱정했다.
그는 "남들은 어디서 힘든 일이 있으면 부모님이나 주위에 얘기하면 되는데 딱히 그럴만한 관계가 없다. 남들이 직선으로 갈 때 나는 이렇게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26세 청년 B 씨는 "그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아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곤 한다"고 말했다.
고아시설피해생존자 인권신원연합의 유진수 대표는 "미아 찾기는 있는데 왜 부모 찾기는 없는 것이냐"며 "우리는 뿌리도 잃고 아동의 권리도 다 잃는다"고 서러움을 토로했다.
이날 행진에는 고아 출신 발달장애인 상담가 임성재 씨(34)와 덕성원피해생존자 안종환 씨도 "힘이 되고 싶다"며 연대했다.
한편 이들은 오는 6일 국회에서 '유기·수용시설피해아동 등의 권리 회복 및 보호·지원을 위한 법률제정 토론회'를 열고 직접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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