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놈①] "텔레그램 연락처 추가해주시면"…목사방 지옥의 시작
텔레그램 통해 피해자 전화번호 확보…SNS로 수집한 신상. 협박 수단
"순진한 피해자들, 말 못하고 혼자서 끙끙"…경찰·기관 적극 신고해야
-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미성년자 사이버 성폭력 사건은 더는 발생해선 안 될 중대 잔혹 범죄다. 만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어떻게 온라인상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게 됐을까 되짚어보면 흔히들 이러한 오류에 빠지기 쉽다. 금전이 필요한 가출 청소년이거나 학생 본분을 다하지 않은 불량아가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평범한 학생이 무슨 연유로 사이버 폭력에 연루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버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에 충실하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모범생이면 되는 것일까. 김녹완 사건은 이 같은 발상이 얼마나 안일하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녹완은 오히려 이같이 평범한 학생들을 노렸다. 어른 말 잘 듣고 교우관계 원만한 청소년들을 혼자 찾아다녔다. 그러다 규모를 키워 '자경단'이라는 피라미드형 범죄집단을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범행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 중에 흔히 말하는 문제아는 없어.그런 애들이면 이렇게까지 당하지도 않았을 거다.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은) 순진한 애들이다"
김녹완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에 대해 "착하다 보니, 주변에 자기 행동들이 조금이라도 알려질까 봐 계속 잡혀 있었던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급기야 한 피해자는 경찰 보호 아래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김녹완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하지 말라고 말려도 계속 (보고를) 올리는 친구가 있었다"면서 "(안 그러면 김녹완으로부터 계속 협박)당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22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년간 김녹완 사건 남녀 피해자는 총 234명이다. 특히 10대는 159명으로 70%에 달한다. 가장 어린 이는 초등학교 4학년생(11)이다. 김녹완은 10대 중 105명(남성 59명·여성 46명)을 성착취 대상으로 삼았고 10대 여성 9명을 강간했다.
자경단원 13명(전도사 8명·예비전도사 5명)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다. 역시 10대가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최연소는 중학생이었다. 이들은 지인능욕을 하려다 김녹완에 덜미가 잡혀 범행에 가담했고 '정신교육' 명목으로 직·간접적 성착취를 당했다.
박사방·N번방 등과 마찬가지로 김녹완 사건에서도 '피해자 신상정보'는 범행의 실마리다. 손에 쥔 신상정보를 협박 수단으로 삼고 피해자를 옭아맬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상대의 신상정보를 알아내기란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화번호'만 알면 신상정보를 터는 건 시간문제다. 상대의 전화번호를 내 스마트폰에 저장하면 카카오톡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상대의 SNS 계정을 단번에 알아낼 수 있다. 공개된 SNS상 프로필, 게시물, 친구목록 등을 단서로 거주 지역, 학교, 지인 등 정보를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요컨대 전화번호 노출 여부에 따라 피해자 운명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녹완은 오랜 기간 사이버 범죄를 학습해 온 인물이다. 따라서 범행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피해자 전화번호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랜덤채팅이나 X(옛 트위터) 등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와 대화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주력했다. 서서히 신뢰를 쌓은 다음에서야 "네가 관심있는 내용을 더 볼 수 있는 좋은 방으로 초대해 줄게"라며 텔레그램방으로 유인했다.
결정적으로 그가 피해자 전화번호를 입수한 경로는 '텔레그램 연락처 추가' 기능을 통해서다. '연락처 추가'를 누르면 추가한 상대의 전화번호를 볼 수 있다. 물론, [설정]→[개인정보 및 보안]을 통해 '모두 비공개' 설정하면 보이지 않는다. 이 경우 김녹완은 "(전화번호 비공개를) 해제해야 나랑 더 연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 꾀어냈다. 전화번호를 가지고 신상정보를 입수한 김녹완은 180도 돌변해 피해자들을 협박하며 굴복시켰다.
스마트폰·SNS 시대에 온라인상에서 낯선 상대와 대화와 소통은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김녹완 사건과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이를 외면한다면 시대에 뒤처졌다는 불만과 불편이 따를 것이다. 범죄 피해도 막고 문화도 향유할 수 있는 최선책은 온라인상에 신상정보를 일절 드러내지 않는 것임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초연결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숨기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승노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2대 3팀장(경감)은 "일단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 자신의 신상에 대해 작은 것 하나라도 알려주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팀장은 오랜 시간 사이버 성범죄 수사를 전담하며 박사방 조주빈에 이어 김녹완 검거에 기여했다. 그는 피해자 상당수는 실제 개인정보 공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보안이 취약한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텔레그램 기본정보를 공개하라, 고 요구하는 이들은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으니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피해를 봤다면 무조건 경찰 등 수사기관이나 지역자치단체별 디지털 성폭력 지원센터 등에 신고해야 한다. 사이버 범죄 특성상 당사자 신고 없이는 수사기관이 사건을 인지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미성년자들은 부모나 교사 등에 알려지면 혼날까 봐 두려워 피해 사실을 숨기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조 팀장은 "부모한테 알리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피해자도 있었는데 가해자들은 이 같은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다"며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신고해서 현 단계에서 끊어내는 게 낫다"고 밝혔다.
통상 가해자들은 소위 '먹잇감'이 적을 때는 한 사람한테 집요하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녹완 사건과 같이 수백명일 경우 신고 혹은 불복종하는 소수의 피해자는 쉽게 놓아주는 심리가 발동한다. '너 아니어도 돼'라는 가해자의 안일한 심리를 역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younme@dqdt.shop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10대 여성 등을 상대로 텔레그램 성 착취 범행을 벌인 '자경단'(목사방)의 총책 김녹완(33·구속기소)이 지난달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5년 전 박사방 사건보다 3배 이상 많은 피해자를 낳았습니다. 그 중 68%는 미성년자여서 충격은 더 컸습니다. 'n번방 방지법'에도 근절되지 않는 텔레그램 성 착취 범행, 그 처음과 끝을 짚어봤습니다. <뉴스1>은 ①'텔레그램 방에 접속했다' ②'열에 여덟은 잡힌다' ③'띄어쓰기까지 본 수사팀' ④'또다른 XX방 없애려면'을, 범행 플랫폼이 된 '텔레그램'과 총책·조직원을 가리키는 '그놈'을 합쳐 '텔레그놈'이란 제목으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