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아파트 방화…아직 풀리지 않은 세 가지 의문
변사체로 발견된 방화범…정확한 사망 원인 안 밝혀져
방화 동기로 층간소음 문제 지목됐지만 추가 조사 필요해
- 이기범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전날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봉천동 아파트 화재를 놓고 경찰과 소방당국이 22일 합동감식에 나섰다.
방화로 인한 화재라는 점, 용의자가 현장에서 발견된 변사체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부분을 놓고 경찰은 조사를 지속할 방침이다.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 A 씨는 불이 난 아파트 4층 복도에서 발견됐다. 이번 화재는 전날(21일) 오전 8시 17분쯤 관악구 봉천동 지상 21층 규모 아파트 1개 동 401호와 404호에서 발생했다. A 씨는 403호와 404호 사이 복도에서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농약살포기'로 추정되는 도구로 화염을 방사해 화재를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 과정에서 A 씨가 사망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A 씨가 방화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지, 방화 과정에서 몸에 불이 붙어 사망한 건지 현재까지 확인이 안 된 상태다.
이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이날 A 씨 시신을 부검한다. A 씨의 내부 장기 손상 정도 등을 바탕으로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할 예정이다.
다만, A 씨의 거주지에서 유서가 발견된 점을 고려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인근에 있는 거주하던 빌라에 "엄마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딸에게 "할머니를 잘 모셔라"라고 적힌 유서와 병원비에 보태라며 현금 5만 원가량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화재에서 관심이 쏠린 대목 중 하나는 방화 동기다. 이를 놓고 경찰은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에 주목했다. A 씨가 지난해 말까지 화재가 발생한 집 아래층인 3층에 거주하며, 당시 위층인 401호 주민과 층간 소음으로 인한 문제를 겪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A 씨는 지난해 9월 401호 주민과 몸싸움까지 벌여 경찰도 한 차례 출동했다. 당시 상호간 처벌을 원하지 않아 형사처벌까지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당시 전신 화상을 입고 4층에서 추락해 크게 다친 70~80대 여성 2명 중 1명은 A 씨와 다툼이 있던 401호 거주자로 확인됐다.
실제로 화재가 난 아파트 건물 내부에는 관리사무소장 이름으로 층간소음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해 6월 공고된 이 안내문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많이 접수되고 있다"며 입주민들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취지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층간 소음 문제가 방화로 이어졌다는 건 추정일 뿐이다. A 씨의 방화 동기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A 씨가 층간 소음 갈등을 겪은 401호가 아닌 404호에도 불을 질렀다는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당시 중상을 입은 다른 1명은 404호 거주자다.
그간 층간 갈등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알려졌다가 사법기관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다른 결론이 나온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023년 6월 발생한 서울 양천구 신월동 다세대주택 방화 살인 사건의 경우 당초 층간 누수 갈등이 살해 동기로 지목됐지만, 재판부는 층간 누수 갈등 자체보단 경제적 어려움, 가족 문제를 피해자 문제로 돌리고 범행에 이르렀다고 봤다.
경찰은 A 씨 가족과 이웃주민 등에 대한 탐문을 통해 A 씨가 불을 지른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계획이다.
A 씨 범행 도구는 당초 '화염방사기'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토대로 '농약살포기'로 추정된다고 정정했다.
그러나 범행 도구가 일명 '세차건'으로 불리는 고압분사기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범행 도구는 불에 타 잔해가 거의 없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경찰은 A 씨의 범행 도구 및 기름 구매 과정을 추적할 예정이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선 A 씨가 사용한 이륜차(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범행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기름통이 발견했다.
한편 이번 화재로 A 씨가 숨졌고, 4층에서 추락한 70~80대 여성 2명이 전신에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추락한 여성 중 또 다른 1명은 404호 거주자다.
아울러 낙상, 연기 흡입 등 경상자 4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단순 연기 흡입으로 현장 조치를 받은 인원은 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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