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들들도 반가울 것" 프란치스코 교황 마지막 길 시민들 발길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 위한 빈자의 성인"…명동성당 조문행렬
분향소 찾은 수백명 시민…"세월호 유족 안아주신 것 기억해"
-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슬퍼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한평생을 사셨잖아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아들들도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셨다고 반가워할 것 같습니다."
26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 분향소 앞에서 만난 신행수 씨(77)는 "가장 슬퍼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설 수 있게 하신 분의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을 우리 신자들은 다들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현지시간 오전 10시)가 엄수되는 이날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지하 성전에 마련된 분향소엔 오전부터 시민 수백 명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검은색의 단정한 의복을 한 시민들은 '기도예식 하실 분', '묵례만 하실 분'이라 적힌 안내 표지판에 따라 일렬로 줄을 섰다. 오전 9시 30분 60여명이었던 줄은 30분 후 명동성당 건물의 시작점까지 늘어나 150여명을 넘겼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신 씨는 "교황님께선 빈자의 성인인 '프란치스코' 이름을 따고, 그 가신 길을 따라가기 위해 계속 낮은 곳으로 향하는 생을 사셨다"며 "우리나라에 오셔서도 가장 작은 차를 선택하셔서 다니시고 예수님 말씀만큼 낮은 곳에서 임하셔서 사목하신 분이라고 기억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방한 당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과 사회적 소수자를 직접 만나 위로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인 것을 기억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신 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방한 당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집전한 시복식에 참석했다고 밝히며 "너무 고통스러워서 십자가를 메고 900㎞를 걸었던 세월호 희생자 유족 이호진 씨께 세례를 주셨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 당시 의전 차량으로 기아자동차의 1600cc급 준중형 차인 '쏘울'을 골랐고, 금제 십자가 목걸이 대신 20년간 착용한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
그는 4박5일 일정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 참사 피해자, 북한이탈주민 등을 만났다.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도 세월호 리본을 그대로 달곤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발언한 것이 알려졌다.
이날 분향소를 찾아 묵례로 예를 표한 박은지 씨(36)와 박은비 씨(35) 자매는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공항 등에서 세월호 유족을 만나시고 다가가서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걸 보며 마음이 넓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다"며 "정치적 중립보단 고통받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세월호의 아픔에 공감하는 세대로서 감동도 느끼고 감사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분향소 안은 참배하는 시민들로 자리가 가득 차고 기도 소리가 이어졌다. 자리에 앉지 못한 신자들은 차례로 들어가 영정 앞에서 성호를 긋고 묵례로 예를 표했다.
분향소 밖은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침울하진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린 시민들은 가족, 신자들끼리 명동성당 앞에서 조용히 사진을 찍기도 하고 분향소를 나온 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약력표의 사진을 찍으며 '인증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약력표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도 담겼다.
신도림 성당에서 함께 참배하러 왔다고 밝힌 전광엽 씨(76)는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그대로 살다가 이 세상을 밝히다 가신 분이었다고 생각했다"며 "교황님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천국 문을 여시고 영원한 안식에 드시라고 기도하러 왔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동성당 분향소를 매일 방문하고 있다는 70대 김예희 씨는 "20대부터 가톨릭 신자인데 교황님을 너무 좋아하고, 선종 후 마음이 너무 그래서 분향소엔 매일 오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거주하는 임 모 씨(75)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선 취임하자마자 병자를 어루만지시고 어려운 분들과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한 분이라 생각했다"며 "갑자기 돌아가시기 전에 '더 연명하지 않게 해달라' 하신 말씀도 마음속에 많이 남아 이렇게 아내와 찾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1일부터 명동성당 지하 성전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 분향소는 이날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은 이날 한국시간 오후 5시(현지시간 오전 10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장례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전 지시에 따라 삼중관 입관 절차 없이 간소하게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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