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가 뒷돈받고 중계기 설치"…아파트 반상회 폭로전 결말은
[사건의재구성] 70대 주민 의혹 제기…횡령 혐의 총무 고소
알고보니 중계기 설치된 적 없어…옥상 확인도 없이 의혹 제기
-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김종훈 기자 = "총무가 우리 동의도 없이 아파트 옥상에 중계기를 설치했대요. 그러면서 업체에서 수수료까지 받았다네요."
지난 2022년 3월 2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반상회에서 주민 엄 모 씨(78·여)는 의심의 눈초리로 이같이 말했다. 엄 씨는 반상회 총무가 뒷돈을 받고 아파트에 멋대로 중계기를 설치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통상 이동통신사들은 소정의 임차료를 내고 아파트 건물 공간을 임대해 중계기 등 통신설비를 설치하는데 엄 씨는 총무가 주민 동의도 없이 이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3년 전 KT에서 매년 360만 원 줄 때는 반대하던 이들이 중계기를 설치한 이유', 'SK에 문의하니 주민회의 통과한 것 아니냐고 했다', '주민 몰래 하면서 보고도 안 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인쇄물까지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엄 씨는 총무가 아파트 관리비를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를 업무상 횡령을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 2023년 5월 해당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엄 씨는 한 달 뒤 반상회에서 '보이지 않는 뇌물의 효과가 대단하다'는 취지의 인쇄물을 재차 주민들에게 돌렸다. 총무가 수사기관에 뇌물을 제공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는 중계기가 설치되지도, 설치된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쇄물에 등장한 SK텔레콤과 KT는 중계기 설치에 대한 문의에 '관련 이력이 없다'고 회신했다.
엄 씨는 옥상에 설치된 중계기를 두 눈으로 확인한 적도 없었다. 아파트 내부에 작은 중계기가 일부 설치돼 있긴 했지만 이는 총무와는 무관한 것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 홍윤하 판사는 지난 1월 1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엄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홍 판사는 "피고인이 아파트 옥상에 통신사의 중계기가 설치되었는지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한 적이 없다"며 "단지 추측에 의해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소사실 중 '총무가 뇌물을 주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발언해 명예훼손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엄 씨가 당시 반상회에 참석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고, 관련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져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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