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 우영우' 이승민의 도전…"나는 이방인, 누군가의 희망 되고파"
[인터뷰] 발달 장애 안고 활동…우리금융 챔피언십서 돌풍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행복하고 뿌듯해"
- 권혁준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프로골퍼 이승민(28)의 별명은 '골프계 우영우'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처럼, 발달 장애를 안고 자신의 꿈을 펼쳐간다는 점이 닮아서다.
드라마 속 가상 인물 우영우의 스토리는 이미 오래전 '종영'됐지만, 이승민의 '무한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롤모델'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롤모델은 없고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자 꿈이 되고 싶다"고 했다.
◇비장애인과 경쟁서 꿋꿋했던 이승민…"사고 치고 싶었는데"
이승민은 최근 출전한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십에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2라운드까지 중간합계 4언더파로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4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KPGA투어 대회 최고 성적이 2023년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기록한 공동 37위였는데, 이를 훌쩍 넘어 우승까지도 넘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돌아본 이승민은 "많은 분이 '승민아, 대박이야. 사고 한 번 쳐봐'라고 말씀해 주셨다"면서 "나도 사고 한번 치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진 않았다"고 했다.
이승민은 3, 4라운드에서 다소 흔들렸고 결국 최종 공동 22위로 대회를 마쳤다. 우승권에서 멀어지면서 '톱10'도 놓친 아쉬운 마무리였지만, 그래도 KPGA투어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을 썼다.
8년째 이승민의 코치이자 캐디를 맡고 있는 윤슬기 코치(45)는 "(이)승민이가 2라운드까지 성적이 좋다 보니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더라"면서 "3라운드에선 같은 질문을 수십번씩하고, 손을 떨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승민도 "선두권에 올라가서 경기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걸 배웠다"면서 "다음에 또 기회가 올 수 있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100명이 넘는 비장애인들과 경쟁해 일군 '22위'라는 성적표는 사실 그 자체로도 대단한 성과다. 이 대회 기간엔 강풍에 많은 이들이 고전했다. 대회 3연패를 노렸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승의 임성재(27)조차 강풍을 못 이기고 컷 탈락했다.
이승민은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플레이하려고 했다"면서 "3라운드에선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어려웠고, 목에 담이 올 정도로 긴장도 컸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프로 8년 차 이승민 "이제는 눈도 잘 마주쳐요"
이승민은 이미 '장애인 골프'에선 세계 톱클래스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 2022년 제1회 US 어댑티드 오픈을 시작으로 숱하게 많은 우승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장애인 골프 랭킹 2위에 올라있다.
윤슬기 코치는 "처음 호흡을 맞췄던 8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늘었다"면서 "거리도 늘고 쇼트게임도 늘었다. 실수가 나오면 그 상황을 인식시키고, 다음번 비슷한 상황에서 얘기하면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장애인 경기에선 골프 외에도 신경 쓸 것이 많다. 다른 선수의 플레이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이승민도 "비장애인 대회에 나갈 때면, 의도하지 않은 행동으로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캐디 형 옆에 붙어 있는데, 그게 잘 안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다. 프로 8년 차가 된 이제는 친한 선수들도 많아졌고, 이승민의 다름을 이해하는 선수들도 많이 늘었다.
이승민은 "예전에 대회에 나갔을 땐 선배 선수들과 눈 마주치는 걸 어려워했다"면서 "그래도 이제는 선후배분들이 정말 잘 대해주셔서, 눈을 잘 마주친다. 경기장에 가는 게 소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며 활짝 웃었다.
윤슬기 코치도 "다른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지다 보니 (이)승민이 본인도 경기에서 안정감을 찾는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나는 이방인,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 끼쳤으면"
아무리 인식이 좋아지고, 이승민 스스로도 편해졌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완전히 허무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말하는 이승민은, 또 다른 '이방인'을 위해서라도 더 잘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다짐하고 있다.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이승민이 가장 좋아하는 격언이라고 했다. 그는 이 격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이승민은 "나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를 키우시는 젊은 엄마분들이 많이 응원해 주신다"면서 "그런 걸 볼 때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자 꿈이 되고 싶다"고 했다.
개인 최고 성적을 냈던 우리금융 챔피언십에서도 이 부분이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이승민은 "우리금융 챔피언십이 열리기 전, '드림라운드' 행사에서 나처럼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라운딩했다"면서 "장애인도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대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더 행복하고 뿌듯했다"고 했다.
물론 이승민의 도전은 결코 쉽지 않다. 18홀 한 라운드, 나흘 내내 집중해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이승민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윤슬기 코치는 "지금 이 정도로 해주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감탄한다.
이승민은 "경기가 잘 안 풀릴 땐 '정신을 차리자'고 수없이 말해본다. 그래도 나한텐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라며 "아직도 내 의사전달과 감정 전달을 잘 못해서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꼭 고쳐서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끝으로 팬들에게 "많이 부족하고 노력해야 하는 저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항상 선한 영향력을 만드는 선수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starburyny@dqdt.shop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