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00일]취재금지·소송·폐쇄…더 세진 '언론과의 전쟁'
백악관, 미국만 표기 거부한 AP '출입제한 해제' 판결도 무시…취재록 편집 의혹도
'가짜뉴스' 주장 반복하며 뛰어난 기성언론조차 무너뜨려…"가장 파괴적인 업적"
- 박우영 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2월 11일(현지시간), AP통신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오늘 백악관으로부터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개명한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따라 편집 기준을 맞추지 않을 경우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리는 행사에 접근이 금지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돌아온 첫 날(1월 20일) "번성하는 경제 자원과 우리나라의 경제와 국민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멕시코만의 명칭을 미국만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는데, AP통신이 이를 따르지 않겠다고 밝히자 출입을 제한한 것이다.
백악관은 이날부터 AP통신의 대통령 집무실 출입을 제한한 데 이어 며칠 뒤에는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 출입도 금지했다.
워싱턴DC 특별구 연방 지방법원은 이달 9일 백악관이 이처럼 AP통신 취재를 막을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AP에 따르면, 백악관은 판결 이후에도 법원 결정을 무시한 채 백악관 취재를 계속해서 막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총구가 AP통신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백악관은 민영 채널 CBS, 지역신문 디모인 레지스터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ABC 방송사에는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을 가해 1500만 달러를 받아냈다.
미국 해외 방송망인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자유유럽방송/자유라디오,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향해서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며 폐쇄 조치를 진행 중이다. NPR 공 라디오와 PBS 공영방송에 대해서도 연방 자금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백악관이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자단 취재록'(pool report)을 삭제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백악관은 기자단 소속 언론사들이 대통령의 일정·발언을 정리하면 백악관 언론팀이 이를 받아 전체 언론사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중간 연결자 역할인 백악관 측이 자기들에 불리한 정보를 고의로 누락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측근을 수장직에 앉힌 FCC(연방통신위원회)도 CBS, ABC, NBC 등 주요 매체들에 대해 이례적인 '사실 왜곡' 혐의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기성 언론이 공격받는 동안 극우 유튜버·인플루언서들의 입지는 강화되고 있다.
전례 없는 백악관 '말싸움 회담'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왜 정장을 입지 않느냐. 이 나라 최고의 사무실에 와서 정장을 입지 않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무례로 비쳐진다"고 소리친 리얼 아메리카 보이스의 브라이언 글렌이 그 중 한 명이다.
AF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100일 동안 백악관에 트럼프 의제에 동조하는 인플루언서, 팟캐스터, 논평가들을 대거 초청했다"며 "권력자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인물들"이라고 평했다.
캐서린 제이콥슨 언론인보호위원회 미국 디렉터는 "백악관이 기자들의 취재 및 기록 활동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러한 내러티브 통제 시도는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가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 이미 통제적인 언론 정책으로 악명이 높았다.
미국 언론자유 추적 프로젝트(U.S. Press Freedom Tracker)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당시 대선 캠프 발족부터 임기 종료까지 총 2520건에 육박하는 언론매체 비난 게시물을 엑스(X, 당시 트위터)에 게시했다. 이 중에 각각 251건, 241건이 자신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해온 CNN, 뉴욕타임스에 집중됐다. 결국 두 매체는 그의 임기 막판 워싱턴포스트(WP)와 함께 소송까지 당했다.
트럼프 임기 동안 백악관의 언론 브리핑 횟수도 이례적으로 줄었다. 프레스가제트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8년간 1100건 이상의 언론 브리핑을 가졌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4년간 단 300건 만을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매체에 대한 비난을 넘어 언론 지형 자체의 변혁을 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언론이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는 반복적인 비난 메시지로 보도 품질과 관계 없이 기성 언론 전반의 신뢰도를 깎으려 한다는 것이다.
댄 케네디 노스이스턴대학교 언론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언론을 표적으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뛰어난 보도를 하고 있는 뉴욕타임스를 상대로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면서도 "그는 뉴욕타임스가 핵심 독자층 외에는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미디어 환경을 설계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시 달글리쉬 메릴랜드대 언론대학원 학장은 "공개적으로 언론을 평가절하하며 그 신뢰도를 깎아내리려 한 시도는 그(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파괴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라며 "그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언론 평판을 훼손한 탓에 대중은 전문성을 갖추고 진실을 쫓는 기성 매체조차 더 이상 믿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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