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대통령 면박준 트럼프 '백인 학살' 사진…콩고였다
로이터통신이 콩고민주공 내전 당시 찍어…"정부군·반군 전투 후 매장 장면"
원 촬영자 "충격 받아"…영상 캡처 게시물 작성한 보수매체도 "트럼프가 이미지 오인"
- 박우영 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과 회담에서 한 장의 사진을 제시하며 남아공이 백인 농민을 학살했다고 주장했으나, 해당 사진은 남아공이 아닌 콩고민주공화국(DRC) 내전 상황을 담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사진 출처인 로이터통신은 22일 이 이미지가 남아공이 아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사진은 2월 3일 콩고민주공화국 고마 지역에서 정부군과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반군과의 교전 이후 찍은 영상을 캡처한 것으로, 로이터 팩트체크팀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인도주의 단체 관계자들이며, 전투 희생자의 시신이 옮겨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라마포사 대통령에 보여준 블로그 게시물은 미국의 보수 성향 온라인 매체 '아메리칸 싱커'가 남아공과 콩고 지역의 인종 갈등을 다루며 작성한 글로, 이미지에는 자막 설명이 없었고, 단순히 '유튜브 영상에서 캡처한 화면'이라고만 표기돼 있었다. 덧붙여진 링크를 클릭하면 로이터의 영상을 활용한 유튜브 뉴스 게시물로 연결된다.
해당 글을 작성한 아메리칸 싱커의 편집장 안드레아 위드버그는 "트럼프가 이미지를 오인했다"고 답변했다.
원본 영상을 촬영한 로이터의 비디오 저널리스트 자파르 알 카탄티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내가 콩고에서 촬영한 이미지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남아공 흑인들이 백인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그 나라의 대통령 앞에서 주장했다"며 놀라워했다.
전날 백악관 회담에서 트럼프는 "그것(학살)에 대한 수천 개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라마포사는 어떤 계층에선 정말 존경받는 사람이지만 다른 쪽에선 그다지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문제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라마포사의 답변을 요구했다.
영상에서는 남아공의 야당 정치인인 줄리어스 말레마를 주축으로 흑인들이 "보어인을 죽여라"라고 외치는 장면이 포함됐다. 보어(Boer)인은 남아공에 정착한 백인 네덜란드인들의 후손을 일컫는 말로, 과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 정책)를 이끈 주축 세력들이다.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라마포사는 대부분 화면을 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며 쓴웃음과 함께 눈을 깜빡이는 등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백인 농부들이 천 명 이상 묻혀 있는 매장지라고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살해된 것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정말 끔찍한 광경이고 충격을 받았다"라는 식으로 설명까지 덧붙였다.
라마포사는 영상 말미에 "이게 어디인지 알고 싶다"며 "난 이런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엔 범죄가 만연하다. 살해당하는 사람은 백인뿐만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NBC 기자가 카타르로부터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하기 위해 보잉 747 항공기를 수령하기로 국방부가 발표한 것과 관련해 질문하자, 트럼프는 "다른 많은 것들을 논의하고 있는데, 방금 영상에서 본 주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느냐. 기자로서 자질이 없다. 스튜디오로 돌아가라"라고 면박을 주며 얼굴을 붉혔다.
이후 트럼프는 백인 살해 관련 기사 인쇄물을 하나하나 넘기며 "사람들의 끔찍한 죽음, 죽음, 죽음"이라고 말한 뒤 "남아공 백인들이 폭력과 인종차별 때문에 도망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남아공은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유산을 청산한다며 토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의 잔재로 남아공 내 대부분의 토지를 백인이 소유하고 있는데, 이를 정부가 수용해 재분배하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회담이 끝난 후 관련 영상을 백악관 엑스(X) 계정에 '바로 전에 집무실에서 선보였던 영상:남아공의 박해 증거'라는 제목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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