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가자전쟁 비극의 출발점…10월7일 하마스 기습 그 마을
니르오즈 키부츠 마을…주민 4명 중 1명꼴로 납치·살해돼
생존 주민 "'러시안 룰렛' 같았던 그날…난 운이 좋았을 뿐"
- 김예슬 기자
(이스라엘 니르오즈=뉴스1) 김예슬 기자 = 붉은색과 푸른색. 그사이 보랏빛 자카란다 나무 아래에서 2023년 10월 7일을 기억하며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이스라엘 남부 도시 키부츠의 니르오즈에 들어서면 한껏 흐드러진 자카란다 나무가 인사말을 건네듯 방문객을 반긴다. 400여 명이 거주하던 이곳에서는 지난 2023년 10월 7일 주민 4명 중 1명꼴인 117명이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의해 납치되거나 살해됐다.
"저희 집 뒷거리가 나무에서 떨어진 보라색 꽃으로 물든 것 보셨죠? 테러리스트들은 그 길로 들어왔어요."
올라 메츠겔(45)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씻길 수 없는 상처를 준 2023년 10월 7일, 니르오즈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한 생존자다.
올라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당시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갔다. 시어머니는 2023년 11월 휴전 때 석방됐다. 그러나 80세인 시아버지는 붙잡혀 있다가 숨졌고, 시신은 지난해 여름 이스라엘로 송환됐고, 함께 잡혀갔다가 사망한 친구 네 명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
니르오즈 키부츠 곳곳에는 당시의 상흔이 남아 있다. 불에 탄 집과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인질로 잡혀간 뒤 풀려난 이들도 키부츠를 떠나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
하마스의 공격에도 전소되지 않고 남은 집 내부에는 10월 7일의 기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올라의 소개를 따라 들어간 한 집의 세이프룸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아이 셋, 반려견 한 마리, 그리고 옆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이웃까지. 이들은 키부츠 주변에서 총성이 들리자 세이프룸으로 몸을 숨겼다.
세이프룸도 안전하진 않았다. 키부츠를 덮친 하마스는 여러 집에 불을 질렀고, 연기로 질식 위기에 처한 이들은 집 반대편의 작은 대피소로 달려가 군인들을 기다렸다. 그들은 겨우 살았다.
니르오즈 키부츠에 있는 230여 채의 집 중 하마스의 공격을 받지 않은 집은 7채에 불과하다.
올라는 "우리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집에 불을 지르지 않거나 집 안에서 총을 쏘지 않은 건 운이 좋은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올라 역시 하마스가 키부츠를 덮쳤을 때, 곧장 남편과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세이프룸에 숨었다. 하마스가 딸아이의 방으로 사용하던 세이프룸까지 들이닥친 건 순식간이었다. 올라는 "여러 무리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3시간을 문 앞에서 버텼다"며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게 없다"고 말했다.
올라는 그날의 키부츠는 '러시안 룰렛'이었다고 표현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주민들이 그저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테러범들의 눈에 띄는 대로 목숨을 잃었다는 의미다.
니르오즈의 우편함에는 빨강, 파랑, 검정 스티커로 각 가구의 생사가 표시돼 있다. 10월 7일 이후 17일이 지난 시점 기준이다. 검은색은 하마스에 납치돼 가자지구에 억류된 사람, 빨간색은 사망한 사람, 파란색은 납치됐다가 풀려난 사람을 표시한다.
당시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약 1200명이 사망했고, 251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뒤 1년 7개월간 공격을 이어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6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자지구에도 올라처럼 "운이 좋았다. 아직까진"이라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피의 보복이 장기간 이어지며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yeseul@dqdt.shop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