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된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신주쿠에서 부활한 '기억·반성·우호'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비석 철거와 함께 해산…새로운 단체 설립 준비
도쿄 박물관, 추도비 모형 전시…"역사 기억하고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일본 군마현(県)이 현립 공원에 세워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강제 철거한 후로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비석은 중장비로 산산이 조각났지만, 추도비의 정신은 일본 곳곳에서 다른 형태로 굳건히 살아 있다.
추도비가 허물어진 것은 지난해 1월 29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설치한 '기억·반성·우호' 현판도 제거됐다. 일본에서조차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모처럼 좋은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대국적, 국제적 시각에서도 (군마현이)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군마현이 내세운 철거 사유는 시민단체가 정치적 행사를 열어 건립 조건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현은 2012년 추도제에서 한 참가자가 "일본 정부가 강제 연행 진상 규명을 성실히 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소요카제' 등 극우·역사 수정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도 계속해서 추도비를 철거하라고 압박했다.
현은 추도비를 없앤 것도 모자라 철거 비용 2062만 엔(약 1억9000만 원)을 지금까지 비석을 관리해 온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에 청구했다. 이에 단체 측은 현에 "지불 능력이 없다"며 해산을 통지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현이 청구한 금액에서 실제 철거에 사용된 금액은 248만 엔(약 2300만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철거 현장 가림막과 경비 등 부차적 비용으로 쓰였다. 당시 군마현은 언론사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상공에서 취재해야 할 정도로 철거 현장 접근을 엄격히 차단했다.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이시다 마사토 사무국 차장은 뉴스1 취재진에게 지난 1년간의 활동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공개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총회를 열고 단체를 해산했다. 2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기억·반성·우호' 현판 앞에 국화를 바쳤다.
이후에는 일본 역사 속에서 희생된 조선인을 기억하고 알리는 데 앞장섰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위령제, 재일 교포 오충공 감독이 제작한 영화 '이름 없는 묘비-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학살의 역사 부정-' 관람회 등에 참가했다.
철거 1주기인 오는 29일에는 다른 단체와 함께 군마현청 앞에서 항의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추도비가 세워져 있던 '군마의 숲' 공원에서도 추도 행사가 열린다. 내달 1일에는 같은 공원에서 그가 새로 조직한 '액션80 준비위원회'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임'을 연다.
이시다 씨는 자신이 속했던 단체는 비석이 없어졌기 때문에 해산했지만 "추도비는 정말 소중하다"며 "계속 지켜나간다는 의의는 이전보다 더 커졌기 때문에 현청 근처에 토지를 사서라도 반드시 비석을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군마현 밖에서도 조선인 추도비를 기억하려는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도쿄의 중심, 신주쿠구 소재 '고려박물관'은 지난 26일까지 조선인 강제 징용 및 희생자 역사를 기록한 전시회를 개최했다. 군마현에서 철거된 추도비와 '기억·반성·우호' 현판을 본뜬 모형도 전시됐다.
전시회를 찾은 한 관람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군마현 추도비 모형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사실을 더 알아두고 싶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친구와 함께 전시회를 찾은 다른 누리꾼은 멀리서 온 관람객들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며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일본과 코리아(한국·조선)의 역사를 기억하고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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