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가자폭탄 막 던진 건 아니다…"아랍 움직이게 만들 것"
가자지구 점령·개발 구상, 해법 못찾는 중동에 충격 주는 '협상술' 분석
백악관 "트럼프 가자 구상, 중동 스스로 해결책 찾게 만들 것"
- 최종일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주시키고 가자지구를 장기간 "소유·개발"할 것이란 충격적인 발언을 내놓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국제사회가 모두 격렬하게 반대할 게 뻔한 무모한 구상을 아무 생각 없이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뒤 이런 구상을 내놓자 미국 언론들은 즉각적으로 '터무니없고 비논리적'이라고 매섭게 몰아붙였고, 유럽과 중동 국가들은 즉각 격렬한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해당 발언이 숙고를 거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란 평가도 없지 않지만, '협상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트럼프의 진의는 따로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우선, 트럼프가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해당 발언을 했을 수 있다고 봤다. 실제 트럼프는 취임 전후로 대담하지만 동시에 법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조처들을 쏟아내고 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문제와 관련해 군사·경제적 강압을 사용할 수 있다거나 이웃 동맹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WP는 트럼프의 구상은 신설 자문기구인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게 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조처 중 상당수가 불법적이란 보도가 막 나오는 시점에서 발표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크리스 머피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엑스(X)를 통해 트럼프의 발언은 가자지구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다'란 취지의 백악관 입장 발표를 전하며 "하지만 언론과 호사가들은 며칠간 이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트럼프는 모두의 시선을, 억만장자들이 일반 국민에게서 정부를 빼앗는 '진짜 이야기'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WP는 트럼프의 구상이 국내 정치 논쟁보다는 중동 정책을 염두에 둔 협상술이란 해석도 있다고 소개했다.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고관세로 위협한 뒤 이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낸 것과 같은 전술이라는 것.
이번엔 중동의 플레이어들에게 보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추구하도록 위협한 셈이다. 다른 말로 "당신들이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가 들어가겠다"는 뜻이란 해석이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권력을 더 많이 내려놓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주장을 멈추도록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오랜 참모 중 한 명은 악시오스에 "그는 미친 듯이 골대를 옮기고 있다"며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던져야 할 것(각종 정책 구상)은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참모는 중동에 대한 트럼프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훨씬 더 나쁘게 만들어버릴 수 있으니, (이게 싫다면) 당신들이 보다 나은 계획을 세워봐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트럼프의 구상에 대해 "전체 중동 지역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만들 것"이라며 비슷한 취지로 옹호했다. 그는 "아무도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대담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비판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역시 "가자지구의 문제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트럼프의 구상을 독창적이고 역동적인 해결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언론들도 트럼프의 급진적인 가자 구상이 중동의 관련 당사국들로 하여금 지금까지보다 더 솔직한 접근에 나서도록 만들 수 있다며 결국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중동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미치광이 전략'(madman)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예측 불가능함'을 보여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에는 예측 불가능성이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1차 행정부 때부터 있었다. 예측 불가능성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의 1960년 저서 '갈등의 전략'에서 '비합리성의 합리성'이란 개념으로 처음 소개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서 이를 실제로 활용했다. 베트남을 놓고 러시아, 중국과 깊은 갈등을 빚고 있었을 때 적들로 하여금 자신이 핵무기 사용 등 극단적 조치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예측 불가능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닉슨 전 대통령은 상대국이 자신이 무엇을 할지 알거나, 불합리한 어떤 것을 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닉슨 정부에서 수석보좌관을 지낸 H.R 할데먼은 사후 발간된 일기에서 이 전략을 '미치광이 이론'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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