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하다 하다 영화까지…"선전이자 안보 문제니까"
美 제작영화, 코로나 이전 절반으로 급감…촬영 단계부터 해외로
"많은 국가, 조직적으로 미 영화산업 훔쳐…100% 관세"
-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자국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에서 제작돼 수입되는 모든 영화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철강, 자동차와 같은 기존 품목별 관세 부과 때와 같은 명분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인데, 영화는 실물이 오가는 철강, 자동차 등과 성격이 다른 콘텐츠 물이어서 어떤 방식으로 관세를 부과할지는 불분명하다.
또 외국어로 제작돼 수입·배급되는 영화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인지, 자국 영화라도 해외에서 촬영하는 영화에까지 관세를 부과할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방영되는 영화까지 모두 포함할지 등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 영화 산업이 빠르게 쇠퇴(DYING)하고 있다"면서 관세 부과 계획을 알렸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우리 영화 제작자와 스튜디오를 미국에서 끌어내기 위해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할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내 여러 지역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특히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 앞서 발효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때 내세웠던 명분과 같이 미국 영화 산업의 쇠퇴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인센티브)는 다른 국가들의 조직적인 노력이며, 따라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면서 "이는 다른 무엇보다 메시지 전달과 선전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국인들이 소비하는 영화가 다른 국가 주도로 제작되면 미국인의 시각이 아닌 해당 국가의 시각과 주장이 투영될 수 있고, 미국인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상무부와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즉시 외국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는 절차를 승인한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를 원한다(WE WANT MOVIES MADE IN AMERICA, AGAIN!)"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주말을 보내고 워싱턴DC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현재 영화 제작이 매우 적다"면서 "많은 국가가 우리 영화를 훔쳤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들이 실제로 큰돈을 지원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상무부와 USTR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외국 영화가 미국 영화 시장 및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안보조항(national security clause)으로 잘 알려진 미 무역확장법 232조는 1962년 제정됐는데,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추정해 보면 어떤 단계든 해외에서 제작되는 영화에는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화의 소비 형태가 다양해진 가운데,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비롯해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OTT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방영되는 영화에 드라마 같은 콘텐츠까지 모두 포함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한 재건 의지를 보이는 한편, 외국 영화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이날 CNN은 관련 소식을 전하며 미국 박스오피스 매출이 2018년 약 12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극장이 폐쇄된 2020년 20억 달러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개봉 작품 수는 2019년의 절반 수준이며, 미국 박스오피스 매출은 연 90억 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화도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해외에서 촬영되는 사례가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영화 대부분은 시나리오 작업, 제작 계획, 캐스팅, 영상 편집, 음향 추가는 미국에서 제작된다"면서 "하지만 할리우드는 전통적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영화 제작의 촬영 단계부터 비용이 훨씬 저렴한 해외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실제 영국, 헝가리,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여러 국가는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유니버설 픽처스 등 주요 영화사들과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업체에 세금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카메라 조작자, 세트 장식가, 조명 기술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식음료 담당자, 전기 기술자 등 영화산업 종사자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NYT는 전했다. 국제 연극 무대 근로자 연합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약 1만 8000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이 중 대부분은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조사 기관 프로드프로(ProdPro)를 인용, 2023년 400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가진 영화 및 TV 프로젝트 지출의 약 절반이 미국 외 지역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사업가 시절 영화 '나홀로 집에 2'에 특별 출연했고, 지난해에는 트럼프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 '어프렌티스'도 개봉하는 등 영화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꽤 인연이 있다. 이번 영화에 대한 관세 부과 추진도 영화 산업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업계 의견을 수렴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 임기 취임 나흘 전인 지난 1월 16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존 보이트, 실베스터 스탤론, 멜 깁슨 등 유명 배우 3명을 '할리우드 특사'로 지명하면서 영화산업 보호에 관심을 표했던 만큼, 자국 영화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는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등을 타자 '한국과 무역도 문제인데, 왜 한국 영화에 아카데미상을 주느냐'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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