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세치혀에 농락당한 트럼프…'빈손 통화'에 서방 동맹국들 실망감
러시아 제재 압박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푸틴에 당근 흔들어
"한 걸음 나아갔다가 열 걸음 물러선 격" 유럽 국가들 좌절감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한 걸음 나아갔다가 두 걸음, 아니, 열 걸음 뒤로 물러선 격이다." (유럽의 한 외교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나눈 전화 통화가 우크라이나와 서방 동맹국들에 큰 좌절감을 안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러시아를 향해 30일 휴전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하며 우크라이나에 희망을 줬다. 하지만 푸틴과 2시간 동안 통화한 이후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채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하겠다며 푸틴을 향해 '당근'을 흔들었다.
여기에 트럼프는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물러서겠다"며 중재 노력에서 발을 뺄 가능성을 시사해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번 통화는 오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평화 협상 국면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광물 협정을 체결한 가운데, 지난주에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이 이스탄불에서 직접 회담에 나서면서 대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번 통화 결과로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의 한 외교관은 "한 걸음 나아갔다가 두 걸음, 아니, 열 걸음 뒤로 물러선 격"이라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의 한 외교관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과의 통화에서는 무조건적인 휴전 요구와 제재 압박에 동의했지만, 푸틴과의 통화 후 명백히 입장을 바꿨다"며 "그를 하루 이상 신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통화 결과에 실망하며 러시아에 대한 신규 제재를 발표했지만 미국의 동참 없이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푸틴이 트럼프와의 통화를 통해 실질적인 양보 없이 시간 벌기에 성공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우크라이나 전문가 오리시아 루체비치는 로이터에 "푸틴은 외교적인 지연 전술을 통해 전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유럽이 단결할 기회를 차단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트럼프와 통화 후 "미래 평화협정에 대한 각서 작업을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했지만, 구체적인 휴전 약속 없이 협상 의지만을 내비친 기만적인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인 세르게이 솔로드키는 독일 도이체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전화 통화는 불확실성만 더했을 뿐"이라며 "우리는 트럼프가 크렘린에 압박을 가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트럼프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고리 레이테로비치 키이우 국립대 교수는 DW에 "트럼프는 핵보유국인 러시아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정보기관은 트럼프를 매우 잘 분석했으며 그의 머릿속에서 필요한 버튼을 능숙하게 누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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