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첫 미국인 교황과 트럼프의 만남
-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정말 놀랐습니다. 미국 출신 교황이 탄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제267대 교황에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선출됐다는 바티칸 교황청 발표를 생중계하던 미국 CBS 아나운서는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워싱턴DC의 바실리카 국립 대성당에는 그의 교황 선출을 축하하는 의미의 하얀색과 노란색 조합의 천이 내걸렸다.
전임인 프란치스코 교황과 관계가 그다지 좋지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새 교황 레오 14세 즉위를 계기로 교황청에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미 백악관은 지난 19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레오 14세를 만났을 때 미국을 방문해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초청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당초 백악관 공식 발표에는 없었던 내용으로 BBC 등의 보도가 있자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이 공식 확인해 줬다.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청의 관계는 사실 그다지 좋지 못했다. 레오 14세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이민정책, 기후변화 대응 등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레오 14세 역시 전임자와 비슷한 입장을 밝혀왔다는 점에서 언제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출신 교황에 좀 더 주목하며 적극적인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 200여 국가, 14억 가톨릭 신자가 우러러보는 교황의 말 한마디가 여론 형성은 물론 국제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설한 레오 14세의 엑스(X)계정 팔로워는 벌써 2000만 명에 육박한다.
특히 레오 14세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전쟁 종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및 평화 협상에서 힘을 보태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뒤 "교황이 대표하는 바티칸이 협상 주최에 큰 관심이 있다고 한다. 절차가 시작되길 바란다"라며 반겼다.
미국은 영국 청교도를 비롯해 유럽 개신교 신자들이 대거 건너와 개척한 개신교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가 2023년 7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신교가 40%, 가톨릭은 약 19%이다.
그러나 개신교가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등 여러 교파로 나뉜다는 점에서 가톨릭은 기독교 중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가톨릭이 미국에서 개신교도들로부터 배척받은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존 F. 케네디에 이어 조 바이든까지 대통령을 2명이나 배출하며 어느덧 주류 기독교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에는 전통적인 가톨릭 세력이 미국 보수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대표적으로 밴스 부통령은 2019년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이번에 함께 교황을 만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아울러 미국 내 기독교 신자가 전체적으로 줄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상황에서 레오 14세의 즉위로 다시 신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뉴욕에서 자란 트럼프 대통령은 장로교 세례를 받았지만, 2020년 미 종교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특정 교단에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적으로 좀 더 유연한 위치에 있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교황에 대해 존경을 표하면서도 자신과 반대하는 의견에는 서슴지 않고 공개설전까지 벌였던 트럼프다. 새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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