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광풍'에 中企 곡소리…"10억원짜리 수출계약 깨졌어요"
코트라 관세상담 8배 폭증…美 관세 쇼크로 산업계 '경고음'
상호관세 도입시 중소업체 피해 더 늘 듯…정부 "피해 최소화 총력"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충남에서 전기조명장치를 제조하는 A회사는 전체 생산 물량의 97%를 미국으로 공급하는 전형적인 수출 특화 기업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관세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사실상 수출길이 막혔다. A사가 진행해 오던 모든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됐고, 오랜 협력 관계를 이어온 미국 측 고객사들마저 투자에 신중한 태도로 돌아서며 직격탄을 맞았다.
전남에서 태양광발전 장치를 만드는 B회사는 태양광 구조물 제품의 70~80%가 철강 자재로 구성돼 있다. 지난달 12일부터 미국이 철강 쿼터제를 폐지하고 모든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B사의 납품 계약 2건에도 하루아침에 8000만 원의 관세가 붙게 됐다.
C사는 최근 40만 달러(약 6억 원)에 달하는 수출 계약이 무산됐다. 우수배관용 토목 자재인 파형강관을 수출하는 C사는 지난해 6월부터 미국 철강회사와 협의해 강관 200톤을 수출하기로 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무관세 수출이 가능했으나, 미국의 관세 부과로 수입사가 관세를 부담하게 되자 수출 협상이 전면 중단됐다. 캐나다로 산업용 펌프 부품을 수출하던 D사도 70만 달러(약 10억 원) 이상의 계약이 관세로 인해 끊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순차적으로 현실화하면서, 기반이 약한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의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제조기업의 60.3%가 트럼프발 관세 정책의 직·간접 영향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 중소 수출업계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당장 지난달부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미국의 25% 관세가 먼저 시행되면서 곳곳에서 수출기업의 피해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영세 업체에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의 관세 비용이 청구되고, 수출이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미국발 관세 쇼크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단 유예가 됐으나 국가별 상호관세마저 더해지면 피해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관세 상담 창구인 '관세대응 119'에는 운영을 시작한 2월 18일부터 지난 8일까지 총 2145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전엔 하루 평균 21건의 상담이 접수됐으나, 관세 발표 이후 상담건이 171건으로 8배가량 급증했다.
관세 관련 상담은 정보 접근성이 낮은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상담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실제 상담 내역을 보면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의 관세가 청구되거나, 관세로 인한 수출 중단, 해외 바이어의 구매 결정 보류 등을 토로하는 상담이 잇따랐다.
관세 피해는 국내 생산 업체에 그치지 않고, 베트남, 멕시코 등 관세가 부과된 해외에서 생산해 미국에 납품하는 업체로도 확산하고 있다. ㈜LG이노텍 멕시코 현지법인에 반도체 제조용 장비 2대를 납품하는 중소업체는 미국의 대(對)멕시코 관세 부과 조치로 인해 통관 일정이 불확실해지면서 납품이 무기한 연기됐다.
국가별 상호관세 적용시엔 수출업체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제조업체 210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0곳 중 6곳(60.3%)은 "미국 관세 정책에 따라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은 전날 한국을 포함한 57개국에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효한 뒤, 반나절만인 이날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해선 일단 90일간 상호관세 유예 입장을 밝힌 상태다. 국가별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이재관 의원은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 제조업체들은 단가 경쟁력 약화로 수주 기회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면서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의 맞춤형 대응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상호관세로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액이 최대 7%(KB증권)가량 급감할 수 있다는 주요 기관들의 분석이 나오면서, 정부는 수출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우선 정부는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인 자동차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긴급 지원한다.
중소 부품업체엔 법인세·소득세·부가세 납부 기한을 최대 9개월까지 연장하고, 긴급 경영안정자금도 추가로 투입한다. 수출 바우처 예산도 기존 2400억 원에서 1000억 원 이상 증액하고 무역보험 지원 한도도 두 배로 확대할 방침이다.
코트라는 미국·멕시코·캐나다 등 20개 해외무역관에 헬프데스크를 설치해 현지 진출기업을 돕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대구경북, 충북, 강원, 인천, 울산 등에서 '찾아가는 관세 대응 릴레이 설명회'를 열어 지역·업종별로 관세 대응 전략을 전파 중이다.
관세 대응 119는 통합 상담 창구의 기능을 보강하고,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확대해 '관세 대응 119 종합지원센터'로 확대 운영한다. 지난 1일부터는 해외 현지의 전문가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관세 대응 바우처 사업' 참여기업을 모집 중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전날 국회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미국의 관세 조치 등으로 대미 주력 수출 품목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이 전망된다"며 "베트남 등 고율 관세가 부과된 국가의 대미 수출이 감소하면서 해당 국가들로 향하던 우리 중간재 수출이 감소하고 현재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미 협상에 총력을 다하며 국내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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