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군함 등 주문 시 우선 제작…관세 돌파구로 조선업 내민 산업장관
安 "美 군함·유조선·쇄빙선 패키지 주문 시 韓 우선 제작 납품"
韓 기업, 대미 투자 확대도 제시…향후 관세 협상 미칠 영향은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방미 출장을 마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조선업 협력 강화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장관은 미국이 군함, 유조선, 쇄빙선 등 패키지로 장기 대량 주문을 할 경우 국내 조선사들이 협력해 미국의 주문 물량을 우선 제작해 납품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고, 미 측은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 의사도 미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전개될 '관세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3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26~28일 2박3일 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안 장관은 미정부 측 통상당국자 및 연방의회 의원, 미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났다.
미정부 측 면담 인사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겸 내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등이다.
안 장관은 이들에게 미국의 관세 조치 계획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양국 간 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했다. 특히 러트닉 상무장관과의 면담에서는 조선·첨단산업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의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협의하면서, 미국 정부가 줄지어 예고한 '관세 조치'에서 한국은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안 장관은 조선업 협력과 관련해 중국과 세계 경제 주도권을 두고 경쟁 중인 미국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미국이 열세에 있는 조선업의 약점을 보완·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중요한 산업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 역시 한국의 조선 협력 강화 제안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안 장관은 미국이 군함, 유조선, 쇄빙선 등을 패키지화해 대량으로 장기 물량을 주문한다면 한국이 이를 우선 제작해 납품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제안했고, 미국 측은 "고맙다"라고 반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한미 조선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 설명했고, 미국이 조선 협력을 어렵게 하는 법·제도를 바꾸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전에 양국이 유연성을 발휘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조선업'을 꼽고, 역량 강화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 및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미국 내 선박 건조를 장려하고, 중국 선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조선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 선박의 28%를 건조해 중국(51%)에 이은 세계 2위였다.
조선업 역량 강화에 급한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 우리나라의 높은 경쟁력은 충분한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카드로서의 가치가 높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난 안덕근 산업장관은 '조선 분야 등에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에 대해 "이번에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게 되면 구체적인 안을 갖고 협의를 해 나가게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 장관은 또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를 미 측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한 관계자 뉴스1과의 통화에서 "대미 투자 확대는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흐름이 아니다"라면서 "여러 기업 경영진들과의 면담에서 투자 계획 의향을 들었고,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선 이번 방미 과정 중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안 장관은 이번 방미 출장을 앞두고 현대차그룹 고위 경영진 등과 비공개로 만나 트럼프의 '관세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현대차의 대미 중장기 투자계획에 관한 대화도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발 관세 압박 완화를 위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 의사를 먼저 수렴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CEO 출신'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국에 대한 투자 약속은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에 서명했다. 이 각서에는 동맹국의 대미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객관적인 기준에 입각한 패스트트랙 절차를 신설하고, 10억 달러를 넘는 대미 투자에 대해선 환경 평가를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에 투자하면 혜택을 아끼지 않겠다는 얘기다.
다음 현실 가능한 대안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가 거론된다. 일본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전부터 미국산 LNG를 대거 수입해 대미 무역흑자 폭을 낮추는 방식으로, 소위 '대미 무역 흑자국' 이미지를 지워가고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다시 개발 드라이브가 걸린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 의사를 밝히며 눈도장을 찍었다.
주 정부가 주도하는 이 사업은 북극해 연안 알래스카 북단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난 천연가스를 송유관을 거쳐 앵커리지 인근 부동항인 니키스키까지 날라 액화한 뒤 수요지로 나르는 프로젝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열린 미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일 양국 기업의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투자 계획 등 미국산 LNG 수출 확대를 대대적인 성과로 홍보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 중이다.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후인 2017~2021년 당시에도 미국산 원유·가스 도입 비중을 상당 수준 늘려 미국의 환심을 얻어낸 바 있다.
안 장관은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협상카드가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에너지 부분도 중요한 대안 중의 하나이고 구체적인 협의는 미국 정부하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많은 나라들이 비슷한 입장에서 미국의 에너지 수입을 늘리겠다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국 입장에서도 에너지 수입의 선을 다변화하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여러 가지 호혜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부분들은 고려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 미국 자동차 업계가 줄곧 요구해 온 수입 자동차 배출 인증 절차 규제와 같은 비관세 장벽 완화 카드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공개된 NTE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가스 관련 부품 규제를 문제 삼았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입 자동차는 부품을 크게 변경할 경우 인증을 받아야 하고, 미미한 변경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어떤 개조가 어떤 범주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왔다"며 "제조업체들은 규제를 위반할 경우 한국 당국에 의해 형사 기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명시했다.
NTE 보고서는 미국 대통령, 상·하원에 제출돼 미국 통상정책에 활용되는 자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우리의 비관세 장벽 완화를 거래 카드로 내밀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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