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수출·환율 '트럼프 퍼펙트스톰' 강타…1기 때보다 치명적
[트럼프 100일]피크 코리아·트럼프 2기 겹쳐 역성장…본격 관세 전 수출 '뚝'
약달러에도 '위안화 대리' 원화 약세 우려…"미중 협상 안되면 많은 비용"
-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미국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수출 감소·고환율 등 퍼펙트스톰(복합 위기)에 놓였다. 특히 8년 전인 트럼프 1기 때보다 훨씬 빠르고 뚜렷한 피해가 확인되고 있다.
트럼프 2기는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으며 정점을 찍고 둔화하는 '피크 코리아' 현상과 시기적으로 겹쳤다. 이에 지난해 트럼프 당선 직전만 해도 2%에 육박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은 반년 새 0%대로 수직 하락했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2%, 전년 동기 대비 0.1% 감소했다. 실질 GDP가 전기·전년 대비 모두 역성장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됐던 2020년 2분기 후 처음이다.
특히 내수를 구성하는 핵심 항목의 성장 기여도가 모두 보합(0)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분기 이래 처음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들 항목은 각각 △민간소비 △정부소비 △건설투자 △설비투자 △지식재산생산물투자 등으로, 탄핵 정국 장기화 등 악재와 트럼프 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려 내수 활동이 침체한 결과로 풀이됐다.
기대를 크게 밑돈 연초 성장세에 대해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식재산 투자를 제외한 모든 부문의 GDP가 전기 대비 감소해 꽤 심각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도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실질 GDP 성장률이 -0.246%로, 조금 더 부진했다면 -0.3%도 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은은 당초 올해 1분기 전기 대비 0.2% 성장을 예상했다.
그나마 순수출(수출-수입)이 1분기 성장에 0.3%포인트(p) 기여해 충격을 완화했다. 그러나 수출 여건은 앞으로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예고한 25% 고율 상호관세(기본관세 10% + 국가별 관세 15%)가 오는 7월 8일까지 90일간 유예됐음에도, 앞서 모든 교역국에 부과된 10% 기본관세와 자동차·철강 품목 관세만으로 수출 기반과 기업 생산이 위축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대미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3% 감소, 대중 수출은 3.4% 감소했다. 여기에 반도체 외 10대 주력 품목 수출도 일제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달 1~10일까지 대미 수출은 0.6% 감소에 그쳤으나, 기간을 늘리자 감소 폭이 14.3%로 치솟았다.
반도체와 조선 관련 업종을 제외한 대다수 제조업체는 이미 업황 부진을 체감하고 있다. 한은의 4월 기업경기 조사에 따르면, 4월 제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전월 대비 1.2p 오른 93.1로 집계됐다. 이는 관세 부과 전 물량 확보를 위한 반도체 선주문과 조선 후방 산업의 호조 덕분으로 풀이됐다. 그 결과 전자·영상·통신장비, 금속가공 업종 등은 체감 실적이 개선됐지만, 나머지 업종, 특히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업계는 관세 여파로 인한 업황 악화를 호소했다.
이 같은 기업 체감 경기는 최근 한은이 내놓은 암울한 전망과 부합한다. 지난 17일 경제 상황 평가에서 한은은 "대미 수출은 관세 인상으로 미국 내 가격이 올라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대중 중간재 수출도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로 인해 축소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국가별 최종 관세가 어떻게 결정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투자와 고용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환율도 요동쳤다. 달러·원 환율은 지난달과 이달 중 1470원을 넘기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연달아 경신했다. 이후 예상을 뛰어넘은 고강도 상호관세 부과 계획으로 미국 내 경기 침체 우려가 심화하자 달러 가치는 약세로 전환했고, 환율은 1430원대로 소강상태가 됐다.
그러나 미국과 주요국 간 협상이 상호관세 유예 기한까지 순조롭게 진행될지 미지수인 터라, 하반기 환율 추가 상승에 대한 경계심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위안화의 대리 통화로 인식되는 원화는 글로벌 약달러 환경에서도 미중 협상 추이에 따라 추가 약세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환율 불안은 국내 경기 대응을 어렵게 하는 핵심 장애물 요인으로 평가된다. 경기 부진에 대응하는 대표 거시 정책 수단은 금리 인하와 확장 재정인데, 최근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각국 환율이 출렁이는 변동성 국면에서는 금융 안정 우려가 커져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워진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한국 경제는 2분기도 역성장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면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있으나 환율과 가계대출 탓에 선제적인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대변되는 정부 경기 부양책의 공백도 2분기 성장에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외 주요 기관은 올해 한국 성장률을 연 0%대로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전망치를 기존 0.7%에서 0.5%로, 시티는 0.8%에서 0.6%로 각각 낮췄다. 한화투자증권은 0.5% 내외를, NH투자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0.7%를 예상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마저 한국 성장률 전망을 기존 2%에서 1%로 대폭 낮춰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1기와 2기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이 점에서 확실히 구분된다. 2017년 출범한 트럼프 1기 정부는 임기 초반 미·중 간 기 싸움을 주로 전개하며 불확실성 고조 국면에 머물렀지만, 2기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임기 100일 내 구체화하고 실행해 한국 거시경제 핵심 부문에 실질적 피해를 입혔다.
불확실성 확산 속도도 2기 정부 들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특히 '선관세 후협상' 형태의 트럼프식 변칙 정책이 강화돼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을 크게 고조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엄부영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원은 "트럼프 2기 출범 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단기 내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추진됐다"면서 "수시로 변하는 트럼프식 협상은 해당국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여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트럼프 발(發) 불확실성은 G2(미중) 패권 다툼이라는 첨예한 문제와 얽혀 있어, 일각에선 한국이 독자적으로 해소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G20 회의 참석 후 "미국과 중국 간 협상이 안 되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유예가 더 연기되더라도 경제적인 비용이 매우 크다는 우려가 많았다"고 전했다.
다만 이 총재는 불확실성 확대 국면에 손 놓고 주저앉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유럽 당국자가 이번 회의에서 위기를 구조조정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그렇다"며 "내수를 활성화하고 수출도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성장 초입에 들어선 한국 경제를 트럼프 발 위기를 계기로 구조 조정해 '피크 코리아' 현상에서 탈출하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icef08@dqdt.shop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