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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본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우라야스시(浦安市)에 위치한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긴모쿠세이'에서 한 고령자가 과자 가게에서 물건을 팔며 활짝 웃고 있다. (긴모쿠세이 우라야스 제공)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할머니, 돌아가시면 산소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10년 전, 철없던 20대의 기자가 아흔을 앞둔 친할머니께 던진 질문이다. 평화로운 오후를 깨는 아찔한 질문에 TV를 보던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시 장례를 소재로 한 문학책에 빠져 있었는데, 그저 할머니의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화장해서 일본이 보이는 부산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 산소도, 납골당도 싫다고 했다.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왜 하필 일본이 보이는 바다냐고 묻자 "일본에서 살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할머니는 일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로부터 난데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이례적인 감정 표현에 내 눈도 휘둥그레졌다. 이유를 묻자, 아버지 본인도 할머니의 속마음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평생 묻지 못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달 초, 일본으로 떠난 출장에서 나는 이 오래된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죽음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고령자들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은행에 돈을 맡기고 "내가 죽으면 딸에게 30%, 아들에게 30%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종이로 적는 유언장 대신 은행과 계약하는 '유언대용신탁'이었다. 유언장으로 인한 상속 분쟁을 피하려고 신탁은행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신탁은행 관계자는 "최근 50대 여성 네 명이 함께 '1인 가구 전용 신탁'에 가입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50대부터 죽음을 준비한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혼자 사는 이들이 누구에게 상속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이유를 묻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거죠" 누군가는 장례를 치러야 하고, 준비 없이 먼 친척이 떠맡게 되는 일이 싫어서 미리 자산을 남겨둔다고 했다. 이건 죽음을 미리 준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일본 우라야스시(浦安市)에 위치한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긴모쿠세이'에서 입주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웃고 있는 모습 (긴모쿠세이 우라야스 제공)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까지도 준비했다. 누구나 집이 편하고 좋지만, 현실적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다. 요양 시설엔 전문 인력이 있지만, 솔직히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집처럼 자유롭고, 요양시설같이 간호사가 있는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었다.

일본 우라야스에서 만난 서비스형 고령자주택 '긴모쿠세이' 관계자는 "임종 이틀 전까지 병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만화 같은 이야기에 의심 가득한 질문을 쏟아내자, 그는 직접 촬영한 임종 영상을 보여줬다. 한겨울 나뭇가지처럼 마른 노인이, 하얀 침대 위에서 딸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노인은 "죽기 전까지 내가 사랑하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늘 말해왔다고 했다. 건강 상태로는 요양병원에 입소해야 했지만, 금연과 외출 제한 때문에 이곳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을 선택했다. 얕은 숨으로 두세 번 빨고 마는 것이 전부였지만, 담배 끝이 붉게 타오를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스쳐 지나갔다.

죽음을 거부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나답게' 마무리하겠다는 선택. 그건 죽음을 미리 준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특권처럼 보였다.

한국도 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일본처럼 유언대용신탁이나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같은 서비스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지만 반응은 아직 미미하다. 일본을 찾은 이유도, 이 서비스들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직접 보고 듣기 위해서였다.

느낀 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문화'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나무가 있어도 알맞은 땅이 없으면 자랄 수 없다. 일본에서 잘 되는 초고령화 산업을 들여와도, 한국에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가 없다면 뿌리내리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관련 산업은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일본에선 장례 시설을 직접 둘러보는 '엔딩버스 투어',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해양장' 등 초고령사회에 맞춘 산업들이 빠르게 꽃을 피우고 있다.

할머니께 장례 방식을 물은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철이 들었고, 그래서 더는 같은 질문을 드리지 못했다. 다음 고향에 내려갈 때는 용기를 내어 다시 할머니께 물어볼 생각이다. 아직 여쭤봐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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