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대신 바다로" 일본은 '해양장'이 대세…10년 새 8배 늘었다
[초고령화는 신산업이다]⑥일본엔 초고령화가 키운 '신(新)산업' 성업
해양장 인기…노견 전용 요양원에, 스타벅스 치매 카페까지
- 김근욱 기자
(도쿄=뉴스1) 김근욱 기자 =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국내에 아직 낯선 '신(新)산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해양장' 서비스다. 일본의 한 해양장 전문업체는 연간 시행 건수가 10년간 약 8배 증가했다.
반려견 요양원인 '노견 홈'도 있다. 반려견도 사람과 함께 고령화되면서, 노인이 늙은 반려견을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이 증가하자 일본 전역에서 관련 노견 홈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치매 환자들의 일상생활을 돕는 '치매 카페'도 눈여겨 볼만하다. 글로벌 브랜드 스타벅스도 일본 내 일부 매장을 'D-카페'(Dementia·치매)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달 2일 방문한 일본 도쿄의 해양장 전문업체 '하우스 보트 클럽'(House Boat Club)에 따르면 해양장 실시 건수는 2013년 106건에서 2023년 862건으로, 10년 사이 약 8배 증가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용자 만족도다. 서비스 만족도 조사 결과 '매우 만족'이 53.8%, '만족'이 39.7%로 전체의 93.5%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실제 해양장 서비스 이용자 A 씨는 "남편은 평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저 역시 무언가 남기기보다는 자연에 돌려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는 이용 후기를 남겼다.
또 다른 이용자 B 씨는 "아내가 바다를 좋아했기에 고민 끝에 선택하게 되었다"며 "앞으로는 바다를 볼 때마다 오늘 이 시간을 떠올리며 살아갈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해양장은 장례 목적으로, 고인을 화장한 후 그 유골을 해양 표면 위에 뿌리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1991년 이후 장례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해양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해양장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 않다. 다만 최근 해양장이 급증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자, 일본해양산골협회는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협회가 강조하는 첫 번째 기준은 '유골 분쇄 의무'다. 해양장 사업자는 유골이 타인이 알아볼 수 없도록 반드시 1~2mm 크기로 분쇄해야 한다. 협회는 "유골을 분쇄하지 않으면 법적 문제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해양장 장소에도 규정이 있다. 해변, 방파제, 댐 등 육지와 가까운 바다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피해야 하며, 육지에서 최소 1해리(약 1852m) 이상 떨어진 해상에서만 진행 가능하다.
환경 보호를 위해 유골 외 플라스틱, 유리, 금속 등의 인공물은 일절 투입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유골과 함께 꽃을 뿌리는데, 이때에도 줄기를 제외한 '꽃잎'만 허용된다.
하우스 보트 클럽에 따르면, 해양장 비용은 평일 기준 약 295만~440만원, 주말·공휴일은 352만~495만원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올해부터 해양장이 합법화됨에 따라 관련 시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초고령화 사회가 낳은 신산업으로는 반려동물 요양원인 '노견 홈'도 있다. 사람이 가는 요양원처럼 노령견의 일상생활 지원부터 건강관리와 사후 장례까지도 지원한다.
일본은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견도 함께 초고령화를 겪고 있다. 일본 펫푸드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14.76세로, 1980년대 7세 수준이던 때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반려견도 사람처럼 나이가 들면 '치매'가 발생할 수 있다. 밤에 돌아다니거나 이유 없이 짖고, 배변 실수가 잦아진다. 아픈 반려견을 돌보는 것은 고령 보호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현재 일본 전역에는 반려동물 요양원과 같은 위탁 보호 시설이 200곳 이상 운영 중이다. 단, 비용 부담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도쿄의 한 노견 홈에서는 소형견(7kg 이하) 기준 6개월에 약 720만 원, 대형견(30kg 이하)은 약 1080만 원의 비용이 든다. 월 10박, 20박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도 운영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는 7900여 개의 '치매 카페'가 운영 중이다. 치매 카페는 말 그대로,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 스타벅스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도쿄 마치다시에서는 총 9곳의 스타벅스 매장이 'D-카페'(Dementia Cafe)로 운영되고 있다.
스타벅스 재팬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D-카페는 예약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2시간이다. 치매 환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모여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스타벅스 재팬 측은 "D-카페는 폐쇄된 공간이 아닌, 일상 속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열리는 열린 공간이다"며 "단순히 인지증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을 넘어, 누구든 경계 없이 연결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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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저출산과 고령화는 '정해진 미래'다. 이미 시작된 '인구의 계절'은 되돌릴 수 없다. 이 흐름은 한국을 '1% 저성장'이라는 그늘로 데려왔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는 순간, 위기는 기회가 된다. 2007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일본 기업들은 고령자를 소비자이자 '시장의 중심'으로 바라보고 새 판을 짰다. 이제 같은 길목에 선 한국에게 일본은 가장 중요한 참고서다. 초고령화를 신산업의 기회로 삼아야 노인도 살고, 국가도 산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