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97%, 미국 85%인데…한국은 23%에 그친 '이것'[영끌의 역습]③
순수 고정금리 주담대 비중 23% 불과…'주담대 체질 개선' 나선 금융위
"금리 떨어질텐데 장기 고정금리?"…소비자 선택 받으려면
- 김근욱 기자, 김도엽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김도엽 기자 = "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 확대 등 2025년도에 제시한 주요 과제를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겠다. 금융권과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한다."
이달 9일 열린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금융위원회 관계자가 남긴 마무리 발언이다. 금리가 6개월마다 바뀌는 '변동금리' 중심의 주담대 시장을 '고정금리' 위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정부 입장에서 고정금리 확대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금리 변화에 따른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덜어내고,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관리에도 유리하다. 특히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보다 과감하게 조절할 수 있어 통화정책 운용의 유연성도 높아진다.
문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다. 금리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장기·고정금리'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전문가는 장기·고정금리가 대중화되려면 대출 갈아타기(대환 대출) 장벽을 허무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1일 '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활성화'를 위한 정책연구용역 입찰을 공고했다. 이번 연구는 장기·고정금리의 표준 모델을 마련하고, 금리 전략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금융당국이 '주담대 체질 개선'에 본격 돌입한 때는 지난해 4월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에 혼합금리 대신 '순수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30%까지 늘리라는 새 행정지도를 시행했다. 혼합형은 고정금리로 시작하지만, 5년이 지나면 변동금리로 전환돼 '금리 변동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 이후 국내외 기준금리가 급격히 인상되면서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은 급격히 늘어났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이자비용 지출은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전년 대비 18.3%, 5.3% 증가했다. 당시 이자 부담 증가는 '소비 위축'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또 2020년 2%대 저금리로 '혼합형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은 최근 5년 만에 금리 재산정 시점을 맞았는데, 대출금리가 4~5%까지 상승했다. 한 시중은행 대출 상담사는 "2%대로 대출을 받았는데, 5년 지나니까 금리가 5%를 넘었다는 전화가 계속 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고정금리 활성화는 '거시 건전성 관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제금융협회(IIF)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로, 세계 38개국 중 2위를 기록하며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변동금리는 과도한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을 받으면서 "앞으로 금리가 떨어질 거야"라는 기대에 따라 변동금리 대출을 선택하고, 여력보다 과도한 대출을 받는다는 것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보험효과'라고 표현하면서 "고정금리 대출에선 '보험 효과'가 작용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가계부채의 과도한 누적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고정금리 확대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순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23.1%에 그친다. 반면 프랑스는 97.4%, 독일 90.3%, 미국은 85.0%로 장기 고정금리가 보편화돼 있다.
고정금리 대출이 많아져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유연해질 수 있다. 통화정책의 핵심은 기준금리를 조정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거나 경기 과열을 진정시키는 데 있다.
대출의 대부분이 변동금리라면, 기준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이로 인해 소비 여력이 감소하고,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구조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이 즉각적인 이자 부담 증가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보다 과감하게 금리 조절에 나설 수 있다.
문제는 고정금리 대출이 항상 소비자에게 유리한 선택은 아니라는 점이다. 금리 인하기에는 오히려 변동금리 대출이 이자 부담을 더 효과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한국의 대출금리는 약 20년 전부터 꾸준히 하락해온 추세"라며 "역사적으로 보면 변동금리가 소비자에게 더 유리했던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의 평균 대출금리는 2008년 7.5% 수준에서 2021년 2.7%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이후 대규모 유동성이 풀리면서 '초저금리 시대'가 열렸고, 최근 들어서야 다시 4%대로 반등한 상황이다.
우 전문위원은 향후에도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는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시점에 10년 동안 금리를 고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주 우리은행 부동산금융부 부부장도 "금리 변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장기 금리 전망에 근거한 상품 선택이 중요하다"며 "현시점에서는 기준금리가 장기적으로 인하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행권은 지난해 금융당국의 행정지도에 발맞춰 '10년 고정금리 주담대' 상품을 잇달아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미한 상황이다. 특히 현 상황은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는 시기여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장기 고정금리'는 불리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우병탁 전문위원은 장기·고정금리 대출의 활성화를 위해선 '대출 갈아타기'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비자가 고정금리를 선택하더라도, 금리가 하락하면 언제든 더 저렴한 대출로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출 갈아타기에는 중도상환 수수료를 포함해 다양한 거래 비용이 따른다"며 "수수료뿐 아니라 절차 자체도 지금보다 훨씬 간편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모바일을 통한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가 도입되며 절차가 쉬워졌지만, 소비자에게 요구되는 서류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은행별 가계대출 총량이 강하게 규제되고 있어 갈아타기를 더 활성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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