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홈플러스 이어 발란까지"…유통가 덮친 '미정산' 악몽
'정산 지연·재택근무' 작년 티메프와 비슷한 발란
경기 침체 지속…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위기
- 문창석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온라인 명품 유통 플랫폼 '발란'이 정산금 지연 사태에 이어 기업회생 신청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경기 침체 및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겪은 유통업계는 '미정산 악몽'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지 우려가 크다.
28일 명품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발란은 지난 24일 입점사들을 대상으로 정산 지연을 공지했다. 발란의 월평균 거래액은 약 300억 원으로, 전체 입점사 수는 1300여 개다.
발란은 현재 진행 중인 과거 거래 및 정산 데이터에 대한 검토가 마무리된 후 정산금을 지급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회사 측은 "28일 각 파트너사별로 정산 오류 내용과 지급 일정을 통보하고, 이후 정산 일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입점사들은 현재 발란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미정산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공시에 따르면 발란은 2023년 말 기준 자본 총계가 마이너스(-) 77억 3000만 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실적은 아직 공시되지 않았지만, 출범 이후 누적된 적자가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법원은 아직 발란의 기업회생 신청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 한 입점 판매자가 발란 사무실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회생 관련 파일을 촬영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점을 고려하면 내부적으로 회생 절차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유통업계는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며 크게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티메프 사태도 정산 지연부터 시작해 기업회생 신청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입점사들의 우려가 크다.
특히 현재 발란의 상황은 지난해 티메프 사태 초기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위메프 역시 미정산 사태가 발생하기 전 '시스템 오류로 미지급이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고, 티몬은 논란이 확산된 후 내부 수리를 이유로 직원들의 근무 체제를 재택으로 전환했다. 발란 직원들도 지난 26일부터 전원 재택근무 중이다.
특히 명품업계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 업체를 포함한 유통 시장 전반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지금까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버텨왔지만, 경기 침체와 고물가·고금리에 소비 부진까지 지속되면서 구조적으로 악화된 수익성을 반전으로 돌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침체일로다. 생활용품 등은 온라인 유통업체에 밀리고 있고, 온라인 대비 상대적 우위인 신선식품은 같은 업권 내에서 할인 경쟁이 지속되며 마진율이 낮다. 홈플러스의 경우 매년 적자가 누적된 끝에 유동성 위기가 오면서 지난 4일 기업회생을 신청하기도 했다.
다른 대형마트도 흑자를 내고 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이마트·롯데마트는 최근 몇 년 동안 보유 부동산 자산을 팔아 자신이 임대해 쓰는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하는 추세다. 홈플러스도 부동산 매각은 물론, 최근까지 슈퍼마켓 사업의 매각을 추진하면서 위기를 넘기려 했다.
온라인 유통업체도 매출과 수익성이 점차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SSG닷컴·G마켓·11번가 등 쿠팡을 제외한 국내 주요 e커머스 기업 모두가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속되는 내수 부진에 알리 등 중국 업체들의 한국 시장 공략까지 겹치면서 경쟁력이 점차 저하된 탓이다.
이미 발란의 사례가 나온 버티컬 커머스 업계도 갑자기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명품·식품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만큼 기본적인 시장이 작아서다. 특히 이들 대부분은 신생 업체들이라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취약하다. 해당 사업의 업황이 부진에 빠지거나 사모펀드·벤처캐피털 등에서 돈줄이 막히면 언제든지 발란 같은 미정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발란은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지난해 티메프, 올해 홈플러스의 사례를 볼 때 정산금 지연에 대해선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지속적인 경기 침체 및 내수 부진으로 유통업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서 업계 내 어느 업체든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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