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달]車·반도체·철강 '초비상' 조선 '수혜'…해법 고심
현지 생산·투자 확대만으로는 한계…세부 대응전략 수립 난제
- 박기호 기자, 이동희 기자, 김종윤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이동희 김종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약 한 달간 국내 기업들은 매일 쏟아지는 자국 산업 보호 조치에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비상식적인 조치를 예고한 후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식 협상 전략 여파다.
특히 원칙을 발표하면서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탓에 국내 기업들은 파급 효과를 예측하기도, 세부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른바 트럼프발(發) 리스크가 재계를 좌지우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기아, SK하이닉스,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워싱턴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맞춰 현지 생산을 늘리고 투자를 확대한다는 게 기본 전략이지만 전방위 압박을 피해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내에서 가장 격변기를 겪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다. 한 달간의 유예를 발표한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 관세와 철강 관세 등 자동차 밸류 체인은 물론 미국 시장 판매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관세 부과까지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 시각) 자동차 관세 도입 일정에 대해 "4월 2일쯤 실행에 옮길 것 같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대미 연간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4% 증가한 1277억 8647만 달러다. 이 가운데 자동차는 지난해 우리나라 대미 수출 1위 품목으로 지난해 기준 수출 규모는 347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액은 21억 달러에 불과하다. 무역 불균형을 꼬집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호의를 베풀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국내 대표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을 빠르게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시범 가동을 시작한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HMGMA)은 올해 1분기 준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생산 확대에 나선다. 기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과 함께 미국 생산 120만 대 체제를 구축한다. 미국 현지 판매량 70% 안팎을 현지 생산으로 충당해 관세 적용에서 벗어나겠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업계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수입차 관세 부과와 반(反)전기차 정책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으로 전기차 구매를 꺼린다면 전동화 전환 속도는 더욱 지연될 수 있어서다. 이미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지난해 4분기에 모두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에 빠져 있다. 다만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관세 폭탄을 비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자동차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06억 8000만 달러다. 반도체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회원국 간 관세를 물리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대한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2025년 반도체산업 수출 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0% 성장할 전망이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 등에 따라 변동성이 클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022년에 제정된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은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파운드리 공장에 370억 달러를 투자한 삼성전자는 47억 4500만 달러를,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 달러를 투입, 반도체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 중인 SK하이닉스는 4억 5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한 상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법 보조금의 현행 요건을 평가하고 변경한 후 일부 계약을 재협상할 계획이다. 이에 일부 지급이 예정된 보조금은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재협상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반도체 기업들이 보조금을 받은 후 중국 등 해외 투자를 늘리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생산 비중을 축소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도 동시에 제기된다.
국내 철강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 결정에 비상이 걸렸다. 과거 협상을 통해 얻어낸 연간 263만 톤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대미(對美) 철강 수출량은 2023년까지 쿼터 내 범위(259만 톤)까지 머물렀다가 지난해 277만 톤으로 늘었다. 현재까진 초과량인 14만 톤(5.3%)에만 관세가 붙었다면 이제는 전체 물량에 관세가 붙어 K-철강의 가격 경쟁력에 치명타가 불가피해졌다.
결국 현지 투자로 대응하기로 했다. 세아그룹은 텍사스주에 연간 6000만 톤 규모의 특수합금 공장을 현재 건설 중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남부에 전기로 방식의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현지 현대차(005380) 공장이란 확실한 수요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포스코 역시 상공정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상공정은 고로 또는 전기로를 통해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도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화 전략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업은 최대 수혜 업종으로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격히 쇠락한 자국의 조선업 경쟁력 부흥을 위해 한국의 협력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최근 미국 공화당의 마이크 리·존 커티스 상원의원은 동맹국에 자국 함정 건조를 허용하는 내용의 '해군 준비 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 태세 보장법'을 공동 발의한 것도 호재다.
발의된 두 법안은 미국과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미 해군 함정 및 해안경비대 선박을 건조하거나 부품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외국 조선소에서 미국 해군 함정 건조는 금지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새로운 수주 시장 등장을 반기고 있다. 미 해군은 지난해 기준 295척인 군함을 오는 2054년 390척으로 늘릴 계획이다. 구매 비용은 1조 750억 달러(약 1562조 원)로 추정된다. 단순 계산으로 연간 수십조의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보호 장벽을 쌓은 다른 산업과 달리 우방국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라며 "K-조선은 미국이 원하는 역량과 우방국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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