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00일]'관세 폭탄' 기업 '초비상'…실적·공급망 '이중고'
고율 관세에 가격 경쟁력 하락 우려…정책 변화에 불확실성도 확대
생산기지 이전, 가격 인상까지 고려…라이벌 기업간 '동맹' 추진
- 박기호 기자, 김종윤 기자,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김종윤 김성식 기자 =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은 매일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오는 29일 취임 100일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의 통상 질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이유로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를 부과했고 그 여파로 실제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또한 상호관세 정책 시행 직후 갑자기 유예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에 '불확실성'이란 복병과도 씨름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과의 패권 경쟁까지 격화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중간에서 옴짝달싹도 못 하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의 관세 정책을 최대 경영 변수로 판단하고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27일 경제계에 따르면 가장 혼란을 겪고 분야 가운데 하나가 대미 수출 품목 2위 '반도체'다. 반도체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회원국 간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대한 품목 관세를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2022년에 제정된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47억 4500만 달러, 4억 5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보조금 지급액을 줄이거나 취소하려는 모습마저 보인다.
가전업계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여기에 고율의 상호관세를 추가했다가 90일간 유예한 상태인데 가전업계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생산기지가 있는 다른 국가의 관세율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처지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한 동남아 지역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46%), 태국(37%), 인도(27%) 등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책정한 바 있다. 이들 지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략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동남아 지역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066570)는 물론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 기업을 비롯한 부품·소재 기업들도 진출해 있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영향권에 들어온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일부로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내달 3일부터는 이를 자동차 부품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은 그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대미 수출 시 무관세 혜택을 받았지만 꼼짝없이 25%의 관세에 노출된 것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완성차 업체가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 자동차는 43만 2831대로 이 가운데 21만 4229대(49%)가 미국으로 향했다. 업체별 미국 수출 물량은 △현대자동차(005380) 9만 485대 △기아(000270) 6만 4758대 △한국GM 5만 8986대 순이었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미국에서 3월 기준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생산 거점을 재조정하는 한편 부품 현지화를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달 중순 그룹 차원의 관세 대응 태스크포스(TF)팀을 발족해 현재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국 판매 '투싼'을 미국 앨라배마 공장으로 이전하고,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하던 캐나다 판매 물량을 멕시코로 넘기고 있다.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종도 미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관세 시행 전 완성차 및 부품 선적을 최대한 추진해 완성차 기준 3.1개월의 재고를 확보했다. 현지 부품 업체를 선정해 현지 조달하는 방안도 진행 중이다.
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능력(캐파)을 연간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늘리고 생산 차종은 전기차 외에도 하이브리드차를 혼류 생산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6만 대)과 기아 조지아 공장(34만 대)에 HMGMA까지 합하면 양사의 연간 미국 생산 캐파는 120만 대까지 늘어난다. 지난해 미국 판매량(170만 대)의 70%에 달하는 수준이다.
반대로 한국GM은 부평 공장의 대미 수출 생산 물량을 2만여 대 늘리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차 관세에도 불구하고 국산 수출 차량이 여전히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1월부터 달러·원 환율이 1400원을 웃도는 등 고환율 현상이 계속되는 데다 GM의 대표적인 해외 생산국인 멕시코도 우리와 동일한 25%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점도 증산에 힘을 실었다.
철강 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 제품에 대해 25%의 품목 관세를 부과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에 철강을 수출할 때 연간 263만 톤까지 무관세 쿼터를 적용받았다.
관세 여파는 대미 수출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3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8.9% 감소했다. 3월 수출 중량도 14.9% 줄어든 25만톤으로 집계됐다.
국내 철강업계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돌파할 카드로 동맹을 꺼냈다. 자동차와 철강에서 50년 이상 협력했던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미국에 공동 투자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현대제철(004020)이 투자하는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설에 포스코그룹도 참여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해당 제철소에서 생산한 물량 일부를 포스코가 판매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현지 제철소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문제는 신규 공장 가동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25% 관세 장벽 악영향은 한동안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현대제철의 가동 목표 시점은 오는 2029년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 공장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과 무관하게 필요했다"며 "관세 정책의 투자를 결정한 시기를 앞당긴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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