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키울 골든타임 놓쳐…창업계에 인재 끊겼다"
[혁신이 죽었다②]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창업 생태계에는 인재 공급 기회"
-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기자,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김도우 기자
"지난해 미국은 전체 벤처투자의 3분의 1이 인공지능(AI) 산업에 투입됐습니다. AI는 막대한 돈이 필요한 산업인데 우리는 투자를 못했죠."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국이 돈을 풀면서 벤처투자 시장에도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었다.
당시 비대면 서비스로 몸값이 크게 뛰었던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2022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고금리 기조로 추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가치가 깎이면서 플랫폼 스타트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탈들의 자금 회수(엑시트) 길도 막혔다.
그리고 1년 뒤인 2023년 11월,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면서 AI 산업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투자를 받은 오픈AI를 필두로 구글, 메타 등 자본력이 충분한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경쟁력을 잃었나'라는 질문에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금리 문제뿐만 아니라 산업이 바뀌는 시기였는데 우리는 이걸 놓쳤다"며 이와 같은 배경을 설명했다.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 센터장으로부터 들어봤다.
이 센터장은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창업을 경험한 창업가 출신이다. 2015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로 합류한 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거쳐 지난해 7월 다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으로 돌아왔다.
민간과 공공, 그리고 국내와 해외에서 창업 생태계를 경험한 그가 진단하기에 현재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글로벌 트렌드는 확실하게 AI를 향하고 있는데 AI에 새롭게 뛰어들 우리나라 창업가가 대규모로 등장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유중 하나는 고금리 기조로 얼어붙은 벤처투자 시장이다. 예전만큼 공격적으로 투자를 할 수 없는 벤처캐피탈은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심사숙고한다. 최근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는 투자가 줄다 보니 창업을 고민하던 인재들이 도전을 망설이면서 창업 자체가 줄었다는 점이다. AI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기에 IT 대기업 혹은 대학원·국가연구기관의 박사급 인재들이 창업해야 승산이 높다.
이 센터장은 "지금 상황에서 다니고 있는 직장을 포기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는 결정은 쉽지 않다"며 "그러다 보니 창업신에 들어오는 인재들의 퀄리티가 낮아지고 벤처투자도 위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4'에 따르면 대기업 재직자 중 '최근 1년간 창업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50.5%로 2022년부터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이대로 활력을 잃게 되는 것일까.
이 센터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불황으로 인한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면서, 구조조정으로 재취업 시장에 공급될 인재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직장을 잃었던 인재들이 2000년대 초반에 벤처 붐을 일으켰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못된 생각이긴 한데요. 저는 결국 올해 대기업들이 직원들을 자를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뜻하지 않게 인재들의 공급이 생길 거고 그게 창업 생태계에 좋은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대기업에서 밀려난 인재들이 창업만 고민하는 것은 아닐 테다. 눈을 낮춰 다른 기업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고 해외 기업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
이 센터장은 "인재 유출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겪지만 우리 사회가 만든 기술 자원들을 그렇게 놓치는 건 아쉽다"며 이들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인재들의 창업을 기대하는 것과 동시에 이 센터장이 희망을 걸고 있는 또 다른 잠재 창업가 그룹은 해외에서 역량을 쌓고 있는 유학생들이다.
그는 창업가의 출신을 크게 △유학생 △대기업·명문대 엘리트 △기존 산업 내 강자(로컬 도메인)로 제시했다.
'유학생 그룹'은 해외에서 공부하며 선진 기술을 익힌 이들이고 '기존 산업 내 강자'는 이수진 야놀자 대표처럼 유학생과 엘리트 출신도 아니지만 자신의 산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들이다.
이 센터장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엘리트 그룹 출신이 압도적으로 높다"면서도 "엘리트 그룹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 배출되는 인재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기업만 450개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서 창업 기회가 있을 때 유학생 그룹이 들어와 스타트업을 할 수 있도록 우리도 깨어있어야 합니다."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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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 혁신은 죽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전세계 혁신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열에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낙오됐고, 여타 산업에서도 기술 우위를 점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아직 저력이 있다. 골든타임은 되살릴 수 있다. IMF도 극복해낸 민족이다. <뉴스1>은 2025년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 혁신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혁신, 정책, 자본시장 전문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