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씩 달라는 소상공인, '자구안' 있나[강은성의 감]
- 강은성 기자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100만 명. 소상공인이 작년 한 해 폐업한 숫자입니다. 올해는 이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됩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남의 일도 아닙니다.
자영업자와 소공인의 무더기 폐업은 일자리 감소와 금융권 부실 채권 증가로 연결됩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5년도 '폐업지원' 신청은 불과 석 달만에 2만 7366건으로, 작년 1년치에 육박했습니다.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입니다. '남의 일'이라 볼 수 없는 이유지요.
그래서일까요. 절박한 소상공인들은 정치권을 향해 외쳤습니다. 정부에서 소상공인 사업장 한 곳당 1000만 원 씩 '지원'해야 한다고요.
이를 실현하려면 약 3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올해 국회가 합의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이 13조 8000억 원인데, 그 2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지난해 정부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면서 가게 한 곳당 '전기료' 명목으로 30만 원씩 나눠줬습니다. 총 2000억 원의 재정이 투입됐습니다.
올해는 '배달비 지원' 명목으로 또 한 번 30만 원 씩 나눠주고 있는 중입니다. 이 역시 동일한 2000억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습니다.
최근 마련된 추경엔 '부담경감패키지'라며 한 곳당 50만 원씩 총 1조 5700억 원의 현금성 지원 방안이 추가됐습니다. 즉 올해는 대상 소상공인 한 곳당 80만 원의 현금 지원을 받는 셈입니다.
일련의 정책이 소상공인의 회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요. 실제 정책을 집행한 고위공무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상공인 지원을 하겠다며 예산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분무기'를 뿌리는 느낌입니다. 가뭄에 찌들어 쩍쩍 갈라진 밭에 분무기를 뿌려댄다고 해갈이 되겠어요. 땅에 스며든 물은 거의 없고 공중에서 다 흩어져 말라버린 그런 상황 같아요."
'1회성 현금지원' 정책이 가진 단점을 그는 이렇게 단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국민의 혈세와 기업의 출연금으로 마련된 정부 예산은 공중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 경쟁력 회복과 재기에 도움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번에 소상공인들이 '1000만 원 씩 지원해 달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그간 정부가 되풀이해온 현금성 지원책이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는 방증이며, 그럼에도 '어려우면 돈을 준다'는 학습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정부의 정책은 과도한 수준입니다. 현금 지원정책이 저정도이지, 그 외 소상공인 재기와 재취업 등을 위한 예산은 수십배에 달합니다. 당장 지난해 7월 윤석열 정부는 소상공인 회복을 위한 예산으로 25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소상공인의 '자구안'입니다.
소상공인 지원과는 결이 다르긴 합니다만, 민간기업에 정부 재정을 투입할 때는 엄격한 자구안을 요구합니다.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이 그랬고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재정 지원을 받는 대가로 자구안을 수십차례 내놨습니다. 그래도 혹독한 평가를 받고, 부실에 대한 책임을 졌으며, 뼈를 깎았습니다. 혈세를 수혈받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소상공인이 1000만 원 씩 달라고 한 요구가 적지 않은 반감을 샀던 것은, 소상공인의 '어려움'만 호소했지 정부 지원을 통해 어떻게 재기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자구안'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자영업 구조조정'을 얘기합니다. 2500만 경제활동 인구에 소상공인이 766만입니다. 정상은 아니죠.
만약 자영업자들이 1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폐업 비용으로 사용하고 빚을 청산하거나 혹은 이 기회에 과당 경쟁에서 빠져나와 '인력난'을 겪고 있는 기업으로 들어가는 '재취업'의 길을 간다면 예산 사용의 목적성이 보다 뚜렷해 질 수도 있겠지요.
퍼주기식 현금성 지원은 소상공인을 살릴 수 없습니다. 소상공인은 '약자'만을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로서 스스로 살아남을 자구안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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