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서 정원사까지…역사에 휘말린 파란만장한 삶 [역사&오늘]
2월 7일,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출생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6년 2월 7일,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태어났다. 그는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와 함께 굴곡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푸이는 1908년 고작 2살 10개월의 나이에 황제 자리에 올랐지만,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며 퇴위했다. 이후 자금성에서 '폐제'라는 이름으로 머무르다 1924년 북경 정부에 의해 쫓겨났다.
1932년 일본의 지원으로 세워진 만주국의 황제가 됐지만, 실권 없는 허수아비 황제에 불과했다. 그는 일본 관동군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만주국의 국가원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만주국의 모든 정책 결정은 일본이 했고, 푸이는 그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만주국 황제로서의 권위나 존경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의 꼭두각시라는 오명과 함께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푸이는 소련군에 붙잡혀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서 5년간 생활했다. 1950년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범' 신분으로 10년간 수용소에서 사상 교육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다른 전범들과 함께 마오쩌둥 사상과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받았다. 수용소 생활을 통해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공산주의 사상에 점차 동화됐다.
이후 사면된 푸이는 '아이신 교로 푸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시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식물원 직원, 자료 정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정원 일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일하고,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소박한 일상을 보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홍위병의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푸이는 저우언라이의 보호로 위기를 넘겼다. 그는 정원사로 소박한 삶을 살아가다가 1967년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그는 중국 근현대사의 축소판 같은 삶을 살다 간 비운의 황제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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