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폐가’ 매입해 펜션 사업…20대 MZ의 단양살이 “시골은 미래의 땅”
[지방지킴] '공익직불금 신청해 주기' 등 할머니들의 복덩어리 오혜린 씨
"희망의 땅 단양서 인생 꿈 계속 펼칠 것"
- 손도언 기자
(단양=뉴스1) 손도언 기자 = "방곡 예쁜이, 경로당으로 빨리 점심밥 먹으러 와야지."
지난 23일 오전 11시 30분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도예촌 마을로 귀촌한 20대 도시처녀 오혜린(28)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다름 아닌, 이 마을 하성균(73) 할머니가 그를 호출한 것인데, 경로당에서 점심을 함께하자는 전화였다.
오 씨는 경로당으로 향했고, 70~80대 할머니들이 차린 '할머니표'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었다. 오 씨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경로당 20대 신입 회원'으로 통한다.
그는 점심 식사 후, 할머니들에게 커피를 대접했는데 다름 아닌 '커피 믹스'다.
오 씨는 "또래 도시 친구들과 유명 가맹점 커피숍에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바닐라, 모카커피를 주로 마셨다"며 "이곳에서는 70~80대 어르신 친구들과 커피 믹스를 즐기는데 커피믹스가 처음엔 텁텁했지만, 지금은 달달한 맛에 반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이성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할머니들은 경로당에서 그에게 '멋있는 남자보다, 우직한 남자를 만나야 한다. 남자는 착해야 한다' 등 현실적 이성 문제를 조언해 줬다.
그는 "또래 도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역시, 이성 문제"라며 "또래 친구들은 '남자는 멋있고 잘 생겨야 한다'라고 말할 때, 할머니 친구들은 잘 생긴 남성보다, 착한 남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오 씨는 할머니들에게 친구 같은 존재다.
방곡 도예촌 마을 김분녀(73) 할머니는 "방곡 아기(오혜린)는 우리들의 친구이자, 선생"이라며 "방곡 아기가 마을로 들어오면서 도예촌 마을은 환해졌다"고 그를 칭찬했다.
그는 할머니들에게 '방곡 예쁜이, 방곡 아기, 방곡 혜린이'로 통한다.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 거주하다 보니, 이런 별칭이 생겼다.
그가 이곳 마을로 귀촌한 지 벌써 4년째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부모님을 따라 이곳으로 5도 2촌 생활을 해 왔지만, 지금은 거의 단양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단양군 농촌체험휴양마을에 첫 취업을 했다.
2년간 그곳에서 일했는데, 이때 단양에 푹 빠졌다.
2023년 계약만료로 첫 직장에서 나온 그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0만 원과 대출금 2000만 원 등 총 5000만 원으로 이 마을 폐가를 매입해 펜션 사업을 시작했다.
오 씨는 "3년째 펜션 사업을 하고 있지만 큰돈은 못 벌었다"며 "그러나 할머니들과 함께 지내면서 풍부한 인생 경험담을 배우고 있다"고 웃었다.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그가 오면서 활기를 찾았다.
그는 펜션 사업을 하면서 할머니 등 시골 어르신들을 돕고 있다.
오 씨는 복잡한 공익직불금 신청해 주기, 인터넷과 스마트 폰 사용법 알려주기, 함께 마트에서 장보기, 잔심부름하기 등으로 할머니들과 우정을 쌓았다.
오 씨는 "할머니들이 공익직불금을 신청하려면 차량으로 편도 30분 거리인 대강면사무소로 가셔야 한다"며 "사실, 왕복 1시간 거리인데 인터넷으로 공익직불금을 신청하면 금방 끝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할머니들이 핸드폰을 잘못 다루셔서 글자 크기가 작아지면 큰 글씨로 바꿔 드리고,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승용차로 목적지 모셔다드리기 등 아주 단순한 일을 도와드린다"며 "할머니들에게 어려운 문제일 수 있지만 젊은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어서 적극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소소한 문제 해결은 마을 경로당으로 퍼졌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그만 찾는다.
그는 도시에 거주 중인 지인들에게 부탁해 이 마을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지팡이도 선물해 줬다.
그는 "마을 어르신들이 제가 선물해 드린 똑같은 지팡이를 하나씩 갖고 다니실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식 봉사활동'도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그는 부모, 귀농인들과 힘을 모아 지난 2023년 10월에 '방곡 봉사단'도 꾸렸다. 방곡 봉사단은 매달 한 번씩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오 씨는 "처음에는 어떤 음식을 대접할지 고민하다가 못 드셔보신 이탈리아 음식 스파게티를 대접했다"며 "이후 떡국, 한우곰탕 등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만한 음식들로 대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두툼한 털양말도 선물했다.
그는 "할머니들이 밭농사 등으로 장화를 신고 가실 때 양말을 대충 신고 가시는 것을 봤다"며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다가 튼튼하고 두툼한 스포츠 양말을 선물해 줬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단양군으로부터 청년 마을 사업을 제안받았다. 군 예산 1000만원으로 방치된 전통 가마 시설을 재활용해 찜질방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에게 따듯한 겨울을 선물하기도 했다.
오 씨는 "시골은 미래의 땅이고,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곳"이라며 "청년들이 반복되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서 시골에서 자신들만의 꿈을 키워갔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단양에서 인생의 꿈을 계속 펼쳐나갈 것"이라며 강조했다.
도시 청년들이 시골마을에서 '귀촌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들의 귀촌일기는 한산한 농촌마을에 활력을 주고 있다.
단양군은 오 씨처럼 성실한 청년들을 더 유입해 활력 넘치는 '시골 마을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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