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美 상대로 '핵 무력' 강조…북미대화 '몸값' 올리기
건군절 연설서 "미국 국제분쟁의 원인" 핵 정당화
북미협상·우크라 전쟁 변수 고려 '수위 조절' 측면도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미국이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정세 혼란의 원인이라며 이에 대응해 "핵무력을 더욱 고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밝힌 가운데 북한이 자신들의 핵전력을 정당화하고, 팽팽한 기싸움을 통해 향후 북미협상에서 '몸값'을 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총비서가 지난 8일 북한 건군절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해 미국으로 인한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불균형'을 언급하며 "핵무력을 더욱 고도화해나갈 확고부동한 방침을 재천명"했다고 9일 보도했다.
북한은 최근 트럼프 정부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밝힌 것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은 비핵화 협상에 동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신들의 핵무력 강화 노선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협으로 인한 '자위권 행사'의 차원이라는 그간의 정당화 논리를 되풀이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김 총비서는 러시아와의 군사적 밀착 관계를 정당화하고 과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이 역시 러시아를 '뒷배'로 삼아 미국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연설에서 김 총비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분쟁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면서 "조로(북러) 사이의 포괄적전략적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정신에 부합되게 러시아 군대와 인민의 정의의 위업을 변함없이 지지성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러 파병의 정당성을 내세움으로써 이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북한 내부의 동요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신문은 김 총비서가 '핵역량을 포함한 모든 억제력을 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새로운 계획사업들'을 내놨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역시 북한이 자체 핵전력 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한 재래식 무기 현대화나 북러 연합훈련을 전개할 가능성을 암시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김 총비서는 북미회담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고 우크라이나전 등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임을 고려해 나름의 '수위조절'에 나선 측면도 있다. 그간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에도 "북한과 관계를 가질 것"이라며 줄곧 '러브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김 총비서는 대미 비난 메시지를 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또 지난해 말 제시된 '최강경 대미 대응전략'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 채 "가변적 안전 형세"나 "세계대전 발발 위험성" 등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만 되풀이했다.
이날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을 통해 B-1B 등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 공군의 연합 쌍매훈련 등에 대한 구체적인 비난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단순 경고성 의도를 넘어 북한이 향후 북미 협상에서의 '군비 통제'와 관련된 요구사항을 미리 제시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이번 연설을 통해 대남 비난은 아예 생략하고 대미 비난은 상당히 신중하게 내놨다"면서 "최근 트럼프 정부발 북핵 관련 언급도 없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에서 제기할 핵군비통제와 위협감소 관련 의제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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