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 속도전에 "지연된 정의, 정의 아냐" vs "신속 능사 아냐"
5명의 대법관 "재판지연은 사법부 불신 원인 돼" 보충의견
이흥구·오경미 대법관 "설득과 숙고 기간 거쳐야" 반대의견
- 이세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대법원은 6·3 조기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이례적인 속도전을 통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가운데,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중 5명은 보충의견을 통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2명의 대법관은 '신속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지 9일 만에 결론을 내렸는데, 6·3·3 원칙'을 지켰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제1심은 공소제기일부터 6개월 이내, 제2심 및 제3심은 전심 판결 선고일부터 각각 3개월 이내 반드시 판결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치열한 토론을 거쳐 신속하고 충실하게 사건을 심리해 결론을 냈다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2000년 부시와 고어가 경쟁한 대통령 선거 직후 재검표를 명한 플로리다주 대법원 재판에 대한 불복신청이 연방대법원에 접수된 후 불과 3~4일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하는 종국 재판을 내렸다는 사례도 덧붙였다.
파기환송 의견을 냈던 서경환·신숙희·박영재·이숙연·마용주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서 대법관 등은 "우리 헌법과 법률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대법관들은 취임사에서 지연된 정의의 해소를 위하여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며 "특히 사회정치적으로 갈등이 심하고 분열을 조장하여 신속한 해결이 필요한 사건, 공직선거사건 등 입법자가 적시에 처리하라고 기한까지 정하여 놓은 사건에 대한 처리 지연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사건은 대통령선거 후보자가 피고인인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라면서 "절차 지연과 엇갈린 실체 판단으로 인한 혼란과 사법 불신의 강도가 유례없다는 인식 아래, 철저히 중립적이면서도 신속한 절차 진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대다수 대법관 사이에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신속한 절차 진행 시도와 노력은 적시 처리가 필요한 유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 여러 법원에도 뚜렷한 메시지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신속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전원합의체는 어느 쪽의 결론이든 그에 이르게 된 논거에 대해 당사자와 일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제시할 의무가 있다"며 "이러한 의무를 앞에 두고 대법원이 신속한 재판의 원칙을 내세워 유례없이 짧은 기간 내에 이 사건의 심리를 마무리하고 결론을 내놓게 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당사자와 국민의 시선 속에 비치는 법원의 공정성, 심리의 충실성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어느 만큼인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법관 등은 바람이 힘자랑을 했지만 결국 해님의 햇볕에 외투를 벗은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예시로 들며 "설득의 승자인 해님이 갖고 있는 무기는 온기와 시간"이라며 "해님의 따뜻한 햇볕도 온기를 전할 시간의 지속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내기에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법관들 상호 간의 설득과 숙고의 성숙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은 외관상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문제이지만 결론에서도 당사자들과 국민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 등은 "이 사건에서 전원합의체의 심리와 재판은 해님이 갖고 있는 무기인 온기와 시간을 적절히 투입하여 숙고와 설득에 성공한 경우인가 아닌가. 우리는 과연 이 재판에서 신속하고 충실한 심리의 비등점을 찾아 구체적 타당성의 확보와 정의실현이라는 보석을 세공하는 데 성공하였는가"라고 의문을 던지며 "우문현답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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