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컨설팅까지 등장…교육 격차 해소 '과제'[고교학점제 두 달]②
생기부 부담↑…"교사가 알아서 문제 해결" 업무과중도
"소규모·농어촌 학교 운영 불가능…고교서열화 심화"
- 이유진 기자
(서울=뉴스1) 이유진 기자 = "이동 수업으로 인한 출결 관리부터 여러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시스템을 갖고 시작했기 때문에 기존의 학교 상황과는 맞지 않는 부분들은 교사가 알아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실정입니다."
서울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프로그래밍 관련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 정 모 씨는 올해 1학기부터 시행된 고교학점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 씨는 "학생들이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기 때문에 수업의 집중도가 상당히 높다"면서도 시행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교사 스스로 해결해야 해 행정 업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5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원하는 커리큘럼대로 적성에 맞는 과목을 골라 수강하는 '고교학점제'가 올해 1학기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 전면 도입됐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에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3년간 192학점 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졸업하는 제도로, 2018년 도입 계획 발표 이후 2020년 마이스터고, 2022년 특성화고에 이어 3월부터 전국 모든 고교 1학년에 전면 적용됐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시간표를 짜 수업을 듣다 보니, 교실을 이동하면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수강 학생이 적거나 가르칠 교사가 없어 과목이 개설되지 않은 경우엔 과목이 개설된 인근 학교에 각기 다른 학교 학생들이 모여 수업을 듣기도 한다.
교사들은 출결 관리는 물론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작성 등 담당해야 할 행정 업무가 과도하게 늘어났다고 이에 따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따른 다양한 과목 개설을 위해서는 대폭적인 교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내신 등급이 기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개편되고, 현 고1이 대입을 치르는 2028학년도부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공통사회·통합과학 등 통합형으로 시행돼 수능 변별력보단 내신이 입시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생기부 부담은 더욱 커졌다.
생기부 관리를 위한 고액 생기부 컨설팅까지 등장했다. 일찍이 진로를 설정해 수업을 듣고, 이에 맞게 점수를 받다 보니 대학 진학에 유리한 진로와 적성을 선택해 시간표를 짜기 위해 사교육업체를 찾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고1 학부모 A 씨는 "요즘엔 1학년 때부터 생기부 관리를 잘 해둬야 학생부 전형으로 대학에 (자녀를) 보낼 수 있어 컨설팅을 받는 분들이 주변에도 많다"고 전했다.
대입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교육 환경 특성상 고교학점제가 사교육 경쟁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잇따르는 이유다.
차정인 전 부산대 총장은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 입시가 초중등 교육을 질곡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도 대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학부모도 학생도 원하질 않고 반드시 실패한다"고 주장했다.
거주 지역과 학부모의 정보, 소득 수준에 따라 교육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학교 간 과목 개설 격차, 교사 부족, 시설 여건 차이 등으로 인해 실질적 선택권이 제한된다"며 "특히 소규모 학교와 농산어촌 지역 학교는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고교서열화와 지역 간 교육격차가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교학점제에 대해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한 줄 세우기'식이 아니라 각각의 개성과 특성을 잘 평가해서 입시에 반영한다는 차원"이라며 "두 개 정부에서 10년 가까이 준비해 온 만큼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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