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최초'로 채워진 尹 탄핵심판…선고만 남은 지난 100일
[12·3 계엄 100일] 탄핵안 접수 90일 경과…역대 최장 전망
현직 대통령의 직접 등판 첫 사례…결과 떠나 사과할지 주목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비상계엄 선포에서 시작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이 마침표를 찍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계엄 선포로부터 100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의 헌재 접수일부터 89일이 흘렀다. 이 기간은 헌정사에서 유례 없는 일들로 가득 채워졌다.
13일 헌재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해 12월 14일 국회로부터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접수하고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린 뒤 정형식 헌법재판관을 주심으로 지정했다. 당시 헌재는 '6인 체제'로 사건을 심리할 수 있는지를 두고 절차적 정당성 논란에 휩싸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탄핵 소추됐다. 헌재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일단락됐다.
헌재는 탄핵소추안 접수 13일 만인 지난해 12월 27일을 시작으로 변론준비기일을 두 차례 갖고 지난 1월 14일부터 변론 일정을 시작했다. 첫 변론 당일 윤 대통령은 헌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2월 30일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발부했다.
공수처는 1월 3일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나섰지만 대통령경호처의 육탄 방어로 한 차례 무산됐다. 윤 대통령은 헌재의 1차 변론기일 다음날인 1월 15일 영장 집행에 저항하다 끝내 공수처에 체포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갇혔다.
윤 대통령은 구속영장 발부 직후인 지난 1월 21일 열린 3차 변론기일 때 처음으로 탄핵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헌장사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심판이었지만, 피청구인 당사자가 헌재에 출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또 현직 대통령이 구속 상태에서 법무부 호송 차량을 타고 헌재에 출석하는 진풍경도 처음 펼쳐졌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 심판 주요 쟁점을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과 절차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 △군·경찰 동원 국회 활동 방해 △군을 동원한 영장 없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지시 행위로 정리했다.
이후 같은 달 23일부터 내란 사태 '2인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 계엄군 사령관들, 한 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조태용 국정원장 등의 증인신문을 잇따라 진행했다.
11회에 걸쳐 나온 증인 16명 중 윤 대통령과 국회 측이 신청한 인물이 각각 11명, 8명으로, 이 중 한 총리와 이 전 장관 등 4명은 쌍방 증인이었다. 재판부가 사실확인을 위해 직권으로 부른 증인(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도 있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각각 국회와 윤 대통령 측 요청으로 두 차례 증언대에 섰다.
윤 대통령은 첫 증인인 김 전 장관을 직접 신문하며 정치활동금지 등 내용이 담긴 계엄포고령의 위법·위헌 문제를 방어하는 답변을 끌어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포고령 1호가 추상적이지만 상징적이란 측면에서 놔두자고 했는데 기억나는가", "집행 가능성이 없는데 상징성이 있으니 놔두자고 했고, '전공의 부분을 왜 집어넣느냐'고 웃으면서 얘길 하니 '계몽한다는 측면에서 뒀다'고 해 웃으면서 놔뒀는데 그 상황은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김 전 장관에게 물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말씀하시니까 기억난다"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은 '비상입법기구 예산 확보' 등 계엄 관련 지시사항이 담긴 쪽지도 직접 작성해 국무위원들에게 전달했다며 윤 대통령을 보호하기도 했다.
이날로부터 사흘 뒤인 1월 26일 윤 대통령은 친정이던 검찰에 의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로 구속기소 되며 사상 첫 '피고인 신분 현직 대통령'이 됐다.
윤 대통령 측은 국회에 군과 경찰을 투입한 것과 관련해 질서 유지를 위해 국회 출입을 통제한 것이지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으려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과 자신이 '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 투입했던 특전사 '요원'을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한 것이라며 이른바 '국민 듣기평가' 표현을 내놨다.
증인으로 나온 계엄군과 경찰 지휘부는 국회 봉쇄·표결 방해 의혹을 두고 대부분 말을 아꼈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5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윤 대통령에게 의원 체포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자신의 검찰 진술을 뒤집는가 하면, 형사재판을 이유로 진술을 거부하기도 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두 차례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10차 변론기일에 나와 계엄 직전 안가 회동, 국회 출동 및 봉쇄, 정치인 체포 지시 등 질문에 형사재판을 사유로 시종일관 답변을 거부했다.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국회의원 체포를 닦달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진술했던 그였다.
반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6차 변론기일 증인으로 나와 계엄 선포 후 윤 대통령으로부터 두 차례 전화를 받았고 "(윤 대통령에게) '아직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8차 변론기일의 증인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은 이 전 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 내부로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이 전 사령관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조 청장 관련 수사 기록 역시 증거로 인정했다. 조 청장이 검찰 진술 조서에 자신이 서명 날인했다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에선 주요 인사 체포 지시 여부를 두고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 측은 특히 홍 전 차장의 '체포 명단 메모' 신빙성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홍 전 차장은 5차 변론기일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과 통화에서 "싹 다 잡아들여", "방첩사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은 후 여 전 사령관과 통화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포함된 '체포 명단'을 듣고 받아 적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증인으로 나온 여 전 사령관도 "특정 명단"이 존재했다고 인정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과 통화에서 계엄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그의 주장이 "탄핵 공작"이라고 비난했다. 조태용 원장은 8차 변론기일 증인으로 나와 홍 전 차장이 명단을 받아 적은 장소와 폐쇄회로(CC)TV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후 10차 변론기일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홍 전 차장은 자신이 작성한 메모 실물을 제시하며 세 차례에 걸친 체포 명단 메모 작성·가필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모 최초 작성 장소를 국정원장 관저 앞이 아닌 자신의 집무실이라고 기존 입장을 수정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저와 통화한 걸 가지고 대통령의 체포 지시라고 연결해 바로 내란과 탄핵의 공작을 했다는 게 문제"라며 "자신도 12월 6일에 해임되니 대통령의 체포 지시라고 엮어낸 게 이 메모의 핵심"이라고 흠잡았다.
국회 측은 계엄 선포 전 국무위원 11명의 성원 이후 5분간 이뤄진 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모임을 정상적인 국무회의로 보기 어렵고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파고들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실질적인 국무회의였다며 "헌법적 틀 안에서" 계엄을 선포했다고 맞섰다.
정작 탄핵 심판에서 진술한 증인들과 당시 모임에 간 국무위원들은 당시 상황을 다르게 평가했다.
한덕수 총리는 10차 변론기일에 나와 "형식적·실체적 흠결이 있었다"며 "통상과 달랐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을 비롯한 참석자 모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만류했다고 증언했다.
최상목 대행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검찰 조사 등에서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반면 김 전 장관은 "국무위원들이 도착하기 시작해 오는 대로 심의해서 순차적으로 심의가 이뤄졌다고 본다"면서 계엄선포에 동의한 국무위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7차 변론기일의 증인으로 나온 이상민 전 장관은 "실질적인 국무회의였다"면서 다른 국무위원들도 국무회의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성원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순차적으로 심의했다는 주장은 오히려 국무회의에 하자가 있다고 해석할 여지를 준다. 계엄 관련 국무회의록과 국무위원들의 부서가 없는 점도 절차적 흠결로 지적된다.
윤 대통령 측은 탄핵 심판 도중 헌재 심리가 불공정하다며 정 재판관에 대해 기피신청을 내는가 하면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의 회피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냈다.
내란 사태 피의자들의 검찰 수사 기록이 다수 증거로 채택되는 등 심리가 막바지를 향하자 대리인단 총사퇴를 암시한 '중대 결심'을 언급하며 헌재를 압박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대리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 국민변호인단'이라는 보수단체를 직접 조직해 변론기일에 맞춰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마지막 변론기일에서 A4용지 77쪽 분량의 최후 진술서를 직접 읽으며 자신이 선포한 계엄은 과거의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것과 다르고, 망국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선언하는 대국민 호소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거대 야당은 제가 독재를 하고 집권 연장을 위해 비상계엄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내란죄를 씌우려는 공작 프레임"이라며 "거대 야당은 제가 취임하기도 전부터 대통령 선제 탄핵을 주장했고, 줄 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 왔다"고 책임을 야당으로 돌렸다.
윤 대통령은 최종의견 진술에서 '야당' 48회, '민주당' 6회 등 총 54회 언급하며 비상계엄 선포의 야당 책임론을 강조했다. 이중 민주당을 지칭하는 '거대 야당'이란 단어는 44회였다. 반면 사죄, 사과를 내포한 단어 언급은 단 세 번에 그쳤다. 탄핵 여부 인용을 떠나 지난 7일 구속이 취소된 윤 대통령이 선고 당일 직접 사과 메시지를 발표할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대통령 탄핵 심판 중 변론 종결 후 선고까지 걸린 기간은 물론 탄핵 심판 사건이 접수된 후 선고까지 걸리는 기간은 역대 최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은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이 걸렸다. 윤 대통령 선고가 내주에 이뤄지면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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