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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 모르고 써도 문제, 알고도 썼으면 더 문제[경찰본색]

이승만 정권땐 '정치깡패'…군사정권 시절엔 '국가폭력' 상징

편집자주 ...영화 '영웅본색'의 팬 사회부 사건팀 김민수 기자가 '경찰본색'을 연재합니다. 본색이란 본디의 생깔이나 정체, 특색을 말합니다. '경찰 본색'은 범인을 잡고 시민을 지키고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경찰다움'을 의미합니다. 창설 80주년을 맞이한 경찰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김정현 반공청년단 단장과 단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공청년단 출범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하얀 헬멧을 쓰고 관저 사수 시위를 벌인 이들은 "백골단은 반공청년단의 예하 조직"이라며 "윤 대통령을 지키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5.1.9/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20·30 청년들로 구성된 '반공청년단'의 하부 행동조직 '백골단'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출범을 알렸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만 보더라도 대부분 비판 일색이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백골단'에 내포된 역사적 맥락 때문으로 보인다. 백골단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승만 정권의 정치깡패 '백골단'…3.15 부정선거 선거전위대 '대한반공청년단'

백골단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이승만 정권 시절이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무소속이 의원정수의 60%를 차지하면서 기존의 정당인 대한국민당과 민주국민당은 원내 소수 세력이 됐다. 이는 연임을 노리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매우 불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 11월 30일 신당인 자유당 창당을 추진하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개헌안은 1952년 1월 18일 163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한 국회 표결에서 부결됐다.

이승만 정부는 개헌안에 반대하는 의원을 소환하자는 관제 운동을 전개했다. 반대로 국회 내 내각책임제 개헌 추진 세력은 의원 소환 운동에 대해 '헌법 유린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때 이승만 정권이 동원한 집단이 백골단을 비롯해 민중 자결단, 땃벌떼와 같은 정체불명의 정치깡패 집단이었다. 이들은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등 정국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1952년 5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해 국회의원들을 체포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같은 해 7월 4일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개헌안이 통과하게 된다.

반공청년단이란 이름 역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1960년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을 당선시키고자 3.15 부정선거를 계획했다. 여기에 선거전위대로 동원된 깡패조직이 '대한반공청년단'이었다. 이들은 민주당 간부들을 겨냥한 테러 행위로 선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백골단 피해자'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인 강민조 씨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백골단 피해자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5.1.1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1980~1990년대 군사정권 '국가폭력' 상징 '백골단'

'백골단'은 군사정권 시절인 1980~1990년대에도 등장한다. 당시 백골단은 민주화 운동 시위대를 진압 및 체포했던 사복 경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은 하얀 헬멧을 쓰고, 청재킷에 청바지를 착용한 모습으로 유명하다. 1985년부터 모집된 이들은 무술 유단자나 특전사 출신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일반 전투경찰과 역할이 달랐다. 전투경찰이 열을 맞춰 시위를 진압한다면, 백골단은 방패와 짧은 곤봉을 들고 시위대 속을 헤집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시위대에겐 백골단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백골단이 크게 질타받게 된 계기는 '강경대 치사 사건'이다.

1972년생인 강경대 씨는 휘문고를 졸업 후 1991년 명지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91년 4월 26일 노태우 정권 타도, 총학생회장 석방, 학원 자율화 완전 승리를 외치던 중 백골단 소속 경찰에게 집단 구타당해 사망했다.

강 씨의 사망은 노태우 정권 타도에 불을 붙였고, 이와 더불어 백골단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내부에서도 '양심선언'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시경 제1기동대 1중대 박석진 일경은 "진정으로 학생들이 우리의 적일까요"라고 반문하며 "더 이상 국민들과 학생들을 상대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싸울 순 없습니다"라고 토로했다.

'백골단 피해자'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인 강민조 씨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백골단 피해자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아버지 강민조 씨, 어머니 이덕순 씨, 누나 강선미 씨. 2025.1.1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그들은 과연 '백골단'의 의미를 알았을까

지난 9일 출범한 반공청년단 예하 조직 백골단을 두고서 흥미로운 점은 '탄핵 반대' 측에서조차도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대국본)조차도 입장문을 통해 "저희 단체는 특정 단체인 '백골단'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백골단 내부에서도 이름을 변경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현 반공청년단 단장은 지난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부 단원들로부터 이름 변경에 대한 건의가 있어 현재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과연 백골단에 참여한 청년들은 백골단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을까. 이름에 대한 건의가 내부적으로 있었다는 점을 미뤄 보면 아마 몰랐던 청년도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강경대 열사 추모사업회는 지난 9일 아래와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1991년 백골단 5인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한 강경대 열사를 쇠 파이프로 난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민중의 투쟁으로 해체시킨 폭력과 민주화 탄압의 상징인 정치깡패 백골단을 부활시키겠다며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당당히 기자회견을 진행하다니, 실로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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