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기소] 존재감 보인 국수본, 달라진 위상…수사역량 보완 과제도
수사권 조정 상징 '국수본'…12·3 비상계엄 사태로 위상 드러내
"수사 역량 강화와 정치적 중립·독립성 보장 돼야"
- 이기범 기자,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박혜연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54일 만이다.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 간 경쟁으로 여러 잡음이 불거져 나왔지만, 경찰은 내란죄 수사권을 쥔 주체로서 과거와 달라진 존재감을 나타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과 상하 관계에서 수사 경쟁을 하는 대등한 관계로 전환된 점이 확인된 셈이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주목받고 있다.
27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수본은 2021년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의 후속 조처로 출범했다. 수사국과 형사국, 안보수사국 등 주요 경찰 수사 기능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경찰 수사 독립성과 수사 역량 제고를 목표로 한 국수본은 한국의 연방수사국(FBI)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존재감은 미미했다. 출범 직후 첫 대형 사건이었던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투기 의혹 수사 당시에는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여러 차례 반려 당하며 검찰의 견제를 받았다.
구조적으로는 경찰청장과의 애매한 관계가 발목을 잡았다. '경찰청장은 긴급하고 중대한 사건이 아니면 원칙적으로는 경찰 개별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국수본부장이 지휘한다'는 경찰법 14조와 16조가 있지만, 조문이 모호해 경찰청장이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수본의 수사 독립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많이 지적됐다.
국수본부장의 계급도 치안정감으로 경찰청장(치안총감)보다 한 단계 아래인 데다, 직제상 국수본이 경찰청의 '하부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그간 국수본이 존재감을 내기 어려웠던 이유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내란죄' 수사 관할 주체인 국수본의 역할이 부각됐다. 경찰청장이 내란 중요 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긴급체포, 구속 기소되면서 부재했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사태 초반에는 내란죄 수사권을 쥐고도 수사 의지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 시급하고 중대한 시기에 도대체 뭘 망설이고 왜 주저하냐"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이 핵심 피의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신병을 확보한 상황에서도 국수본은 윤 대통령 체포를 놓고 "요건을 더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자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검·경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하고, 수사 경쟁이 일단락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특히 경찰은 윤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경호처 흔들기'와 함께 대대적인 광역수사단을 동원해 지난 15일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유혈 사태 없이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특수단은 이날 체포영장 집행에만 약 1120명의 경찰력을 투입했다. 공수처에 파견된 형사팀만 약 570명이고, 경찰청 및 서울·인천·경기남부·경기북부경찰청 안보수사대 450명과 인천경찰청 반부패·형사기동대 100여 명으로 구성된 경찰팀이 체포조에 포함됐다.
또한 2차 체포 작전을 준비하는 사이, 경찰이 박종준 전 경호처장 등 주요 간부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압박하는 등 경호처를 내부적으로 흔드는 '심리전'도 주효했다.
국수본의 남은 과제는 내란 사태 수사로 강화한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수본 내 직접 수사 부서와 인력을 늘리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수본 내 직접 수사부서는 전체 19개 부서 가운데 중대범죄수사과(중수과)과 안보수사 1·2과, 사이버테러대응과 등 4곳(21%)에 불과하다. 이 중 중수과는 최정예 수사 조직이지만 시도경찰청 광역수사단과 수사 범위가 중복돼 폐지해야 한다는 경찰 내 여론이 있었다.
이번 내란 사태 수사에는 국수본의 중수과와 안보수사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반부패수사대 등) 수사관 등 150여 명이 참여했다. 핵심 피의자 수사를 주도한 곳은 중수과였다. 중수과는 김 서울청장·박종준 전 경호처장·김성훈 경호차장·이광우 경호본부장 등을 소환해 수사했다.
이에 따라 중수과 등 국수본 자체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한 인력 확충, 우수 자원 선발에 힘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 내에서도 대형 사건 수사력이 검찰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경찰 수사력이 향상돼야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견제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이 기회에 국수본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성을 더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정권이 바뀌어도 수장이 바뀌지 않는 미국 FBI처럼, 국수본이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온전해야 제 역할과 기능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독립 기구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이 신설된 후 고속 승진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계엄 당시 위법한 명령을 거스르지 못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이번 사태가 정리되고 나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헌법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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