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미아리서 몸 팔아" 딸 유치원에 간 문자…죽음으로 내몰렸다
불법추심으로 사망한 30대 싱글맘…생전 "생활고에 집창촌도 없어져"
거리로 나온 미아리 성매매 여성들…이주 대책 부재, 국가의 '직무 유기'
-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몸 팔아서 번 돈으로 바 가서 술 먹고 놀고, 애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남자 만나러 다닌다는 내용의 비하하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사망한 30대 싱글맘 A 씨와 같이 일한 B 씨는 법정 증인석에서 흐느껴 울다가도, 이성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또박또박 증언하는 모습이 마치 동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꼭 묻겠단 의지 같아 보였다. A 씨 동료들로 꽉 찬 방청석에서도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지난 11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2단독(부장판사 허명산)의 심리로 열린 '30대 싱글맘 죽음으로 내몬 불법추심 사건' 공판기일이었다.
지난해 9월 22일 성매매 집결지인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일하던 A 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채업자 김 모 씨 등으로부터 연 이자율 수천 퍼센트의 고율로 수십만 원을 빌렸던 A 씨는 불법추심에 시달리다 숨졌다. A 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혼자 키우고 있었고, 뇌졸중과 심장병이 있는 70대 아버지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대전에 있는 아버지와 딸을 위해 서울과 대전을 오갔지만 힘든 내색도 없었다. 그런 A 씨의 유서엔 홀로 남을 딸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과 함께 미안함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나이는 고작 30대 중반이었다.
A 씨가 가장 괴로웠던 건 자신을 넘어 지인과 가족들에게 쏟아진 불법추심이었다. 대부업자 김 씨는 A 씨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전화해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협박하고, 심지어 유치원 교사에게도 A 씨가 '몸을 팔고 있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지난 9월 같은 문자를 받은 동료 B 씨에게도 울면서 "이런 전화 받게 해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불법 대부업에 쉽게 노출된다. 성매매 산업에 흘러 들어온 여성들은 자원이 없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다. 성매매 업주들이 여성들에게 주는 '선불금'을 갚아야 할 때나 생계가 어려울 때 손을 뻗게 되는 건 대부업자와 결탁한 업주가 소개한 대부업이다. 선불금 자체를 업주가 주지 않고, 대부업체로부터 직접 빌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성매매는 여성 개인이 마음을 먹는다고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산업 구조가 아니다.
게다가 성매매 집결지들이 사라지고 있어 생계의 위협도 큰 상황이다. 청량리와 천호동, 수원역 집결지에 이어, A 씨가 일하던 미아리 텍사스도 지난 16일 서울북부지법이 첫 명도 집행을 단행했다. A 씨는 숨지기 며칠 전 동료에게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생활고에 시달리고, 성 노동자로서는 집창촌이 없어지는 추세라 수입도 없어지며, 아이가 많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미아리의 성매매 여성들이 17일 거리로 뛰어나온 건 이 때문이다. 이들은 집결지를 강제 철거하는 성북구청을 향해 "우리는 살고 싶다"고 외쳤다. 여성들을 착취해 돈을 번 업주와 건물주들은 막대한 이주 보상금과 개발 이익을 챙기고 떠났지만, 여성들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미아리에 남았다.
업주와 건물주에게는 이주 보상비를 주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성매매 여성들에겐 최소한의 이주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다. 전날 성북구청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던 김수진 미아리 성노동자 이주대책위원장은 '여기 계속 계실거냐'는 질문에 "어차피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에서 고인이 된 A 씨의 죽음에 극단적 '선택'이란 말을 붙이기도 송구스럽다. A 씨는 죽음으로 '내몰렸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성매매 집결지를 없애 더 이상 여성들이 유입되지 않게 하고 성매매 산업을 근절해야 한단 말에 궁극적으론 동의한다. 하지만 청량리와 천호동의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된 후 여성들은 '탈성매매' 했나. 아니, 그들 중 많은 수가 다른 집결지로 갔다. 집도 없고 먹고 살길도 막막한 여성들을 그저 미아리에서 내쫓으면 이들은 어디로 갈까. 이들은 또 다른 집결지나 더 음지인 오피스텔 등으로 갈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는 '아가씨 대출'이란 말이 포털 사이트에 대놓고 광고 문구로 쓰이고, 성매매 집창촌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기만 한 사회다. 사회가 방치해온 성매매 집결지에서 살던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내쫓고 살 곳을 없애버리는 건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유기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자립할 수 있도록 이주 대책과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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