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경찰] "던지기 2만원, 인생 걸지마라…마약총책 꼭 잡힌다"
남성신 서울청 마수대 1계장 "속옷·밥솥·음쓰 봉투 수법 꿰뚫어"
"한국판 DEA 등 콘트롤타워 있다면 국제 공조수사 원활해질 것"
- 박응진 기자, 김민수 기자, 유수연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김민수 유수연 기자
야구 방망이, 자전거 안장, 와인병, 통조림, 공기청정기 필터, 밥솥 안에까지 마약을 숨기더라고요. 요즘은 폐쇄회로(CC)TV를 피하기 위해 야산에 묻는 게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더니 현실이었던 거죠."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이란 얘기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2019년 마약류 범죄로 검거된 사람이 1만 명을 넘은 후 2023년 1만 7000명을 웃돌아 정점을 찍었다. 대부분 필로폰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사고팔고 투약한 사례다.
과거엔 전과자들이 직접 만나 마약을 은밀히 전달하는 '손대 손' 방식으로 대면 거래가 이뤄졌다면, 최근엔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으로 구매한 뒤 '던지기' 방식으로 전달하는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돼 마약 거래가 많이 늘어났다. 최근 20~30대 마약 매수자가 많아진 건 이들이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것과 무관치 않다. 날이 갈수록 마약범죄는 늘고, 마약 밀수·거래 수법은 기상천외해지고 있다.
남성신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이하 마수대) 마약범죄수사1계장(47·경정·경찰대 18기)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소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사무실에서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속옷이나 가방 격벽에 마약을 들여오는 건 기본이고, 도심 한 가운데 음식물 쓰레기 봉투 안에 마약을 넣어 거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인 대한민국 경찰의 마약사범 검거 열정은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보통 한 마약 사건을 수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에서 1년. 이 기간에 마수대에선 증거 확보를 위해 주말도 반납하기 일쑤라 매주 월요일 아침 복도엔 도시락 쓰레기가 수북이 쌓인다. 한 피의자를 검거하는 현장에 다른 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동시에 들이닥치는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마수대에서만 1년에 약 750명의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매일 2명꼴로 잡아들이는 셈이다.
남 계장은 "대한민국 형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날이면 날마다 잡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거리에서 버젓이 마약을 사고파는 일은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마약 던지기 한번 해서 고작 2만원 받는데, 거기에 자기 인생을 걸지 말라"며 "시간은 걸리지만 총책도 반드시 잡힌다"고 경고했다.
남 계장의 사무실에서도 그의 이런 집념을 느낄 수 있었다. 화이트보드엔 유통책과 '드라퍼'(운반책), 매수자 등의 이름이 적힌 피라미드 형태의 마약 유통 구조가 있던 것. 마약범죄 특성상 연루된 사람이 많고 거미줄처럼 관계가 얽혀 있어 이를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 개념도를 그려두는데, 얼마 전 수사에 착수한 따끈따끈한 사건이었다.
그는 "전지전능한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마약 유통책을 한꺼번에 다 잡아들일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론 아래서부터 총책과 밀수입책까지 쭉쭉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 계장이 마약범죄 수사에 발을 들인 건 직전에 국제범죄수사2계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국내 마사지업소에서 일하는 태국 여성들이 밤을 새우기 위해 필로폰을 각성제 삼아 투약하고 있는 걸 적발한 것. 이후 2022년 말 마약수사1계장으로 발령받은 남 계장은 4년째 마약범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남 계장은 "마약범죄 수사를 통해 거악(巨惡·큰 범죄)과 싸우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경찰 조직 내에서 '힘들고 지저분한 일'로 치부돼 마약범죄 수사가 기피 대상이었던 과거보단 근무 환경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검은 세력'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그는 무엇보다도 마약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세관의 보다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며, 마약 투약 의심 현장에선 곧바로 관련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급격히 많아진 마약범죄에 맞서기 위해 인력과 예산의 뒷받침도 주문했다. 아울러 현재는 주로 기회 제공형 함정수사를 통해 밑에서부터 위로 총책을 쫓아가는데, 마약 밀매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잠입 수사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봤다.
남 계장은 "수사기관 간 마약범죄 수사 공조를 위해 비교적 마약범죄 검거율이 높은 경찰이 콘트롤타워를 맡을 필요가 있다"며 "한국판 DEA(미국 마약단속국) 같은 콘트롤타워가 있다면 국제·국내 공조가 보다 원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단순 마약 투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범죄자로만 취급할 게 아니라 마약을 끊은 후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이들로 봐야, 마약 수요가 줄어 관련 범죄도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 계장은 "단순 마약 투약자 대부분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라며 "단순 마약 투약자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치료가 필요한 이웃으로 바라본다면 마약범죄 양상이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성신 계장
△1978년 △경찰대학 행정학과 졸업(18기) △서울시립대학교 세무전문대학원 졸업(세무학 석사)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서울경찰청 형사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금융정보분석원(파견)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2계장 △서울경찰청 마약수사1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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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람도, 조직도 허리가 중요합니다. 위아래를 연결하며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경정(警正)은 경찰의 11개 계급 중 중간인 6번째에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경험이 쌓여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때이기도 합니다. <뉴스1>은 올해 창경 8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경찰의 중간 관리자이자 전문가인 이들의 활약과 애환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