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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여성·소수자 입 막는 학생 사회 '진리의 상아탑' 자격 있나

"너는 잘 살 것이다" 고려대 대자보 그 후 10여년…여학생위원회 통폐합 논란
정치적 표현 문제? 근현대사 중심에 대학생 있어…소수자 기구 탄압 멈춰야

고려대학교 학내인권단체협의회 학생들이 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중앙광장에서 가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인권 자치 기구 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5.1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너는 잘 살 것이다. 술 먹고 저지른 일이기에, 기억 안 난다고 우기면 기억이 안나는 것이기에, 남자이기에, 고려대에 다니기에, 선배와 교수가 너를 위해 기꺼이 탄원서를 써주기에. 너는 잘 살 것이다. 이렇게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너는 이미 너무나도 잘 살고 있다. "

기자가 대학생이던 2016년 고려대학교엔 '잘 살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동료 학생을 강제 추행한 A 씨가 학교로부터 고작 두 학기 정학 처분을 받았고, 지도 교수와 선배들의 선처 탄원 속에 재판에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을 두고 피해자가 쓴 대자보였다. 피해자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을 울렸고, 언론에 다수 보도됐다. 나는 10여년간 종종 그 글을 떠올렸다.

피해자는 당시 고려대 '여학생위원회'(여위)에 해당 사건을 제보했다. 여위는 피해자의 대자보와 함께 '성범죄자와 함께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입장문을 게시했다. "우리는 고립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기력을 버리고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모이고 나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여위의 입장문 말미에 적힌 이 말은 학생 사회에서 숱한 성폭력을 목격하며 무력함을 느끼던 나와 친구들에게도 많은 힘이 됐다.

대학 내 여성·소수자를 대변하는 특별기구가 온전히 존립해야 하는 이유를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미 피해만으로도 일상생활이 벅찬 피해자들의 사건 대응을 돕고, 2차 가해를 막고, 소수자가 고립되지 않게 연대하는 것. 필자가 다니던 대학교에서도 '단톡방 성폭력', '오리엔테이션(OT) 성폭력', '성소수자·장애인 혐오 발언' 등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피해자들을 돕고 2차 가해에 대응한 건 학내 여성·소수자 특별기구였다.

그런데 고려대 여위가 34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소수자인권위원회와 통폐합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6일 열린 고려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대의원들은 여학생위원회와 소수자인권위원회(소인위) 신설 합병의 건을 찬성 102명, 반대 7명, 기권 5명, 의결권 없음 1명으로 가결했다.

특이한 건 여위와 소인위가 징계성 통폐합을 겪게 된 이유다. 전학대회에선 '정치적 편향성'이 지적됐다. 해당 전학대회에 참석한 익명의 대의원은 "여위와 소인위의 재인준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그 이유로 '학내 학우들을 위한 활동이 주가 되지 않는 점, 외부 단체와의 활동이 많이 이뤄지는 것'을 들었으며, 이에 대해 '다소 정치 편향적'이라 말씀했다"고 전했다.

2016년 고려대 서울캠퍼스 정대 후문에 부착된 '너는 잘 살 것이다' 대자보(고려대 여학생위원회 페이스북 출처)

총학생회는 뉴스1에 "정치적 발언을 문제시한 게 아니라 내부 사업 부실이 문제 됐다"고 설명했지만, 전학대회에선 여위가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집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는 (행사의) 기조를 알고 갔느냐" "국민의힘 해체 요구 기조를 알고 갔느냐"는 취지의 추궁이 나왔다. 결국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진보적 담론을 해온 여위의 정치 성향에 대한 지적은 전학대회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여위가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석하고 노동절 청년학생 전야제를 공동 주최한 것, 퀴어퍼레이드 동행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 등이 도마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여위가 올해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었단 것을 두고 "민주주의가 여성 인권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지적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부터 대학 내 기구가 민주주의에, 정치적 사안에, 진보적 담론에 말을 얹는 게 편향적인 것이며 '문제'가 됐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독재 정권과 맞선 민주화 운동엔 대학생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주의 사회란 타자, 즉 '배제된 사람'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학내 여성을 대변하는 여학생위원회가 민주주의와 여성의 관계를 비롯해, 사회 계급·성 지향성 등과 개인의 정체성이 얽힌 '교차성'을 살피는 건 당연하다.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 여성·소수자 기구를 없애는 흐름은 고려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교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생활자치도서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에서 '내란 수괴'라는 표현을 쓴 것을 이유로 재인준을 부결했다.

대학 내 '탈정치화'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소수자 기구의 힘을 빼고 정치적 표현을 문제시 하는 건 민주주의를 역행할 여지가 있어 학생 사회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힘써야 할 학생 사회에서 오히려 이들 기구의 존립을 흔드는 건 민주주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학생 사회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태다.

여성·소수자 기구들이 위협받는 2025년, 10년 전 '잘 살 것이다' 대자보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다. 아직 어느 대학교에서도, 아니 한국 사회 어디에서도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혐오와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성·소수자 기구가 합병되면 인권 침해 및 성폭력 대응이 소홀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소수자에 대한 지원이 후퇴하는 상황은 가해자를 '잘 살게' 만들 뿐이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학생 사회의 역할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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