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에게 '메달'이란?…손흥민을 만들고 김예지가 되는 길[임성일의 맥]
- 임성일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운동선수는 고되다. '몸이 힘들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장벽이 그리 높지 않아 길에 들어서는 이들은 많으나 소위 '뜨기 전'까지는 너무도 어둡고 긴 터널을 견뎌야한다. 통과해 빛을 만났다고 해서 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인기 종목, 프로 스포츠는 '뜬 이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축구의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야구의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김혜성(LA 다저스), 배구의 김연경(흥국생명)이 '급 다른 별'이 될 수도 있음도 보여줬다.
예가 지나치게 이상적이지만, 사실 출발은 다들 그렇게 한다. 슈퍼스타가 아니더라도 야구나 축구, 배구나 농구 등은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면 돈과 명예와 인기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이나 아마추어 선수들의 현실은 다르다. 평소에는 대중들의 시선을 받지 못한 채 고독한 레이스를 펼치기 일쑤고 해당 분야에서 톱클래스라 평가받아도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야하는 이들이 적잖다. 배고픈 운동선수, 아직 꽤 많다.
그들에게도 '인생 역전'이 가능한 무대가 있으니 바로 메이저 종합스포츠대회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메달을 목에 걸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금전적인 보상도 따라온다. 흔히 말하는 '눈 떠보니 스타'가 될 수 있으니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올림픽 메달이란 손흥민이나 이정후나 김연경이 될 수 있는 찬스다.
그래서 근래 메달을 바라보는 '외부의 인식 변화'가 불편하다. 달라진 시선들의 목소리는 대략 이렇다. 이제 금은동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서로 웃으면서 아름다운 경쟁을 펼치고 결과가 나오면 순위를 떠나 다 같이 승자가 되는 축제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스포츠의 본질이 꼭 순위는 아니지 않느냐는 공자님 말씀인데, 당사자들은 답답하다.
"스포츠가 성적지상주의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왜 운동선수들의 경쟁은 다른 잣대인지 오히려 의문이다. 서울대학교를 가기 위해 밤샘하는 공부와 국가대표에 뽑히기 위한 운동선수들의 노력이 다를까? 올림픽만 바라보고 4년 피땀 흘렸는데 참가에 의의를 두라고? 경쟁 없는 분야가 어디 있나. 그럼 수능 시험도 없애야지. 사법고시, 행정고시는 왜 보는가? 선수들의 간절한 도전도 다른 분야와 같은 시선으로 봐야한다."
최근 만난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의 말이다. 쏟아지는 스케줄에 다크서클이 한참 내려왔는데 관련 질문에는 눈이 반짝이고 열변이 쏟아졌다. 체육계의 대표가 됐기에 부러 큰 목소리를 낸 것도 아니다. 현장의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사격 선수 김예지를 알지 못했다. 2년, 4년에 한 번씩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의 신기에 감탄하고, 생소한 펜싱 용어를 따라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오상욱의 외모에 감탄할 수 있는 것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간절함을 모니터 밖에서 속 편히 즐기는 사람들이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중국 하얼빈에서 동계 아시안게임 막이 올랐다. 일반인들에게는 '하얼빈'이라는 특별한 지명에 눈길이 더 가는 대회지만, 동계 종목 선수들에게는 이것이 또 손흥민이나 이정후가 될 기회다.
믿고 보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파리 올림픽 때 양궁처럼 걸려 있는 메달을 싹쓸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주 생소한 종목의 누군가가 불쑥 솟구쳐 지난해 여름 일론 머스크를 감동시킨 김예지가 됐으면 싶다.
특별한 땅에서 금빛 낭보가 쏟아지길, 선수들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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