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신진서, 이래서 세계 1위…급이 다른 실력·인성·소신
농심배 18연승으로 우승 견인…개인전만큼 단체전 진심
현역임에도 '사석 논란' 소신 발언…기부 등 선행도 이어
- 김도용 기자
(서울=뉴스1) 김도용 기자 = 하나의 분야에서 '세계 1위'라는 수식을 얻고 모두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는 합당한 실력 뿐 아니라 귀감이 될 훌륭한 인성까지 필요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바둑 실력은 기본이고, 겸손하면서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인성 그리고 필요할 때 당당하고 과감히 소신을 밝히는 신진서 9단이라면 '세계 최고수'라는 타이틀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펼쳐진 '바둑 국가대항전' 농심신라면배 세계최강바둑전이 한국의 5연속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5연패 중심에 단연 신진서 9단이 있었다.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신 9단은 중국의 네 번째 주자 리쉬안하오 9단을 2시간도 안 돼 제압하며 기세를 높였다. 이어 현재 중국 랭킹 1위로 꼽히는 딩하오 9단과의 명승부 끝에 승리하면서 한국의 우승을 완성했다.
이 결과로 신 9단은 농심배에서만 18연승을 기록, 대회 통산 승률 90%(18승 2패)를 작성했다. 농심배에서는 좀처럼 적수를 찾아볼 수 없다.
앞서 1, 2라운드를 마치고 한국에 신진서 9단, 박정환 9단 둘이 생존하자 중국 바둑계에서는 "이번에도 우승은 힘들다"는 우는 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신 9단에게만 자국을 대표하는 기사 5명이 줄줄이 패해 우승을 놓쳤던 중국 바둑계 입장에서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려였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신진서 9단이 대회를 마무리 지었다.
우승을 확정한 신진서 9단은 "올해 박정환 9단, 설현준 9단과 함께 최종라운드에 임해 시너지 효과를 봤다. 박정환 9단은 아쉽게 졌지만 자신의 역할을 해줬다. 설현준 9단도 옆에서 안 보이게 많은 도움을 줬다"면서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자신에게만 향하는 스포트라이트를 상하이에서 함께 한 동료들에게도 돌린 셈이다.
신진서 9단의 이런 행동은 '외로운 싸움' '고독한 경쟁'이라 표현되는 바둑계에 낯설다.
한 바둑계 관계자는 "신진서 9단처럼 이타적이고 주변을 살피는 일인자는 본 적이 없다"면서 "바둑은 개인 종목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신이 우선이다. 그러나 신 9단은 다르다. 그는 동료는 물론 바둑계 전체를 둘러보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마음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수 신진서 9단은 바둑의 대중화를 위해 누구보다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꾸준하게 출전 대회 우승 상금의 일부를 기부하고 있으며 바둑계 후배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바쁜 대국 일정에도 쉼 없이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는 것도 바둑의 보급을 위해서다. 신 9단 스스로 언론과 인터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 요청에 대부분 응하고 있다.
팬들과 접촉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 9단은 지난달 LG배 결승에서 발생한 '사석 관리 논란'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 팬들의 사인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안에 따라서는 강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신 9단은 '사석 관리 논란'이 발생했을 때 한 매체를 통해 "결승 2국에서 커제의 억울함은 이해 되지만 3국에서 판정 결과에 항의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한국기원만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닌데 중국 측 자세가 매우 아쉽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국 바둑계의 어른들도 침묵하는 이슈인데, 지난해까지 중국 바둑리그에서 거액을 받으며 출전한 현역 선수 입장에서 쉽지 않은 발언이었다.
중국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으나 신 9단은 상하이에서도 "바둑에 정치적인 일 등 외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감정싸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그저 바둑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강단과 소신이 담긴 발언이었다.
그리고 신 9단은 자기 말처럼 대국에만 집중했고, 농심배 우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신진서 9단은 싱가포르에서 왕싱하오 9단(중국)과 난양배 결승전을 치러 올해 첫 개인전 타이틀 획득에 나선다. 우승 상금은 25만 싱가포르달러(약 2억6000만원), 준우승 상금은 10만 싱가포르달러(1억4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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