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쟁 준비됐다" 러, 3년만에 만난 우크라에 장기전 협박
"우리는 21년 동안 싸웠다"…러, 북방전쟁 언급하며 압박
"걷기 전에 기어야 하는 법"…전문가들, 회담 자체에 의미 부여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러시아는 영원히 전쟁할 준비가 돼 있다."
1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3년 만에 성사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대면 회담은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와 협박성 발언 속에 실질적인 성과 없이 종료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측 대표단을 이끈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크렘린궁 보좌관이 협상장에서 "러시아는 영원히 전쟁할 준비가 돼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전했다.
메딘스키는 "아마도 이 테이블에 있는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잃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학자 출신인 메딘스키는 1700년부터 1721년까지 21년간 지속된 스웨덴과의 북방 전쟁을 언급하며 "우리는 21년 동안 싸웠다. 당신(우크라이나)들은 얼마나 싸울 준비가 돼 있냐"고 발언했다.
북방전쟁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과거 자신을 표트르 대제에 비유한 적이 있는 만큼, 메딘스키의 발언은 러시아가 이번 전쟁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점령지 4개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넘기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측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자 러시아 대표단은 "다음번에는 (점령지가) 5개 지역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협상은 단 90분 만에 끝났고, 양측은 핵심 쟁점에서 극명한 입장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테이블을 떠났다.
그나마 양측은 2000명 규모의 전쟁 포로 교환에 합의했는데, 이는 협상 테이블에서 나온 유일한 실질적 성과로 평가된다.
러시아가 협상장에서 보인 강경한 태도에 국제사회는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러시아의 요구를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마이클 맥폴 전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를 통해 메딘스키의 발언에 미국이 대응해야 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푸틴의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는 협상 결과에 대해 "포로 교환, 효과적인 휴전 옵션, 지속적인 대화의 필요성 등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협상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는 실질적인 성과는 부족했다고 평가하면서도 3년 만에 양측이 직접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새뮤얼 채럽 랜드연구소 선임 정치학자는 WP 인터뷰에서 회담 성사 자체를 "중요한 결과"라고 평했다. 그는 "만약 기대치가 낮지 않았다면 기대가 부풀려졌을 것"이라며 "3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대화를 나눴고 무언가에 합의했다는 사실만으로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걷기 전에 먼저 기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담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정상회담 개최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메딘스키는 우크라이나 측이 정상회담을 요청했다고 확인했다.
이번 협상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푸틴에게 직접 담판을 제안하고, 트럼프의 참석까지 거론되며 3국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푸틴의 불참을 공식화하고 트럼프가 "푸틴과 내가 만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낮추면서 협상의 동력이 크게 약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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