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신현우 황보준엽 기자 = #1. 명지엘펜하임은 2004년 학교법인 명지학원이 경기 용인시 명지대 내에 조성한 실버주택이다. 초창기에는 셔틀버스와 룸서비스 등을 제공했지만, 시행 주체였던 명지학원이 파산하면서 모두 중단됐다. 사우나, 식당, 의원 등 복지시설도 폐쇄됐다. 현재 명지엘펜하임은 실버주택 기능을 상실한 채 임대아파트로 홍보되고 있다.
#2.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조성 예정이었던 세대공존형 실버주택 '골드빌리지'는 결국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무산됐다. 현행법상 실버주택은 분양이 금지돼 있어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되면서 투자 유치에 실패한 것이다. 이 사업은 공공과 민간의 역할 구분, 법적 규제, 사업성 등 현실적 한계로 무산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의료·복지·주거 등 사회 전반에서 고령층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가족 중심 부양 모델이 약화되면서 독립적이고 안전한 노후 주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고령층 중 상당수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응급 대응과 건강 관리, 식사·청소 등 일상생활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존 주택에서는 돌봄이나 응급 대응, 사회적 교류와 같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인정이나 데이케어센터 등 기존 시설은 인프라나 전문 인력 면에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버주택은 의료 및 돌봄 서비스를 연계해 고령자의 삶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공동체 생활, 취미·여가 프로그램, 안부 확인 등의 기능을 통해 고립과 우울증 예방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4개 '지속돌봄 은퇴자 커뮤니티'(CCRC)에 거주하는 노인을 5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첫 해 공식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한 노인들은 이후 삶의 질 저하 속도가 유의미하게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버주택은 가족과 사회의 부담을 덜면서도 고령자의 사회 참여와 경제 활동을 도울 수 있다. 반면 이를 외면할 경우 사회복지 비용이 급증하고 세대 간 부담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버주택 확대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모든 고령자가 실버주택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나 자율성 제한 등의 우려로 인해 입주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고령 인구 약 3% 수준인 30만 명 이상이 실버주택 거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의 실버주택은 40곳, 총 9006가구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여 명임을 고려하면, 공급률은 0.1% 수준이다. 공공임대인 고령자 복지주택을 포함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비해 초고령사회에 앞서 진입한 일본은 고령 인구 대비 실버주택 공급률이 약 2.0%에 이르고, 다양한 노인 주거 모델이 발달해 있다. 미국의 경우 공급률이 약 4.8%로, 다양한 소득계층을 아우르는 노인주택이 활성화돼 있다. 국내에서도 2030년까지 실버주택 공급률을 2% 수준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실버주택은 공공형과 민간형으로 나뉜다. 유형별로 보증금과 월세 수준은 다음과 같다. 공공형(저소득층 대상)은 보증금 300만 원 이하, 월세 10만 원 이하 수준이며, 민간 일반형(수도권 중산층 대상)은 보증금 1억 8000만~4억 원, 월세 202만~362만 원이다. 고급 실버타운(강남, 마곡 등)은 보증금 2억~22억 원, 월세 60만~500만 원에 이른다.
공공형 실버주택은 저렴하지만 공급이 적고 입주 조건이 까다롭다. 반면 민간형은 초기 입주 비용과 유지비가 많이 들어 중산층 이상만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 광진구의 '더클래식 500'은 평균 보증금 9억 원, 월 생활비 450만 원 수준이며, 강남구 '더시그넘 하우스'는 보증금 6억 원, 월 생활비 350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실버스테이'는 시세의 95% 이하 임대료로 제공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건강관리, 안부 확인, 식사 서비스 등도 포함돼 중산층 고령 가구를 위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지난달에야 시범사업자가 선정돼, 실제 입주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1980~90년대에는 공공 주도로 실버주택이 공급됐고, 이후 민간 사업자가 전원형 실버주택을 공급했지만 교통·병원 등 필수 인프라 부족으로 실패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도입된 분양형 실버타운 제도는 불법 전매와 투기 논란으로 2015년 폐지됐다. 2015년 이후에는 임대형 중심의 실버주택이 운영되고 있으나, 공급 부족과 중산층 소외 문제는 여전하다.

실버주택 공급이 부족한 원인 중 하나는 민간 사업자에 대한 유인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버주택은 대부분 임대만 가능해 단기 수익 창출이 어렵고, 부지 확보에 큰 비용이 든다. 현행법상 30인 이상 수용 요양시설을 설치하려면 토지나 건물을 직접 소유하거나 공공 부지를 임차해야 한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건설사는 빠른 수익 실현이 중요한데, 실버주택은 분양이 안 되는 구조라 엑시트가 어렵다"며 "운영 수익은 단기간에 나지 않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다"고 지적했다.
서정렬 영산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는 있는데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환금성 측면에서 불일치하는 게 있다"며 "노인주택 형태로 민간이 일정 비율을 공급하면 기금 지원을 늘려주거나 해당 물량에 대한 금리·세금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수도권 등 주요 지역에서는 주민 반대 등 '님비'(NIMBY) 현상으로 인해 실버주택이 기피 시설로 여겨져 부지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윤수민 전문위원은 "운영비를 충당하려면 월세 수입이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중산층 고령자가 월 400만 원 이상의 생활비를 지불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실버주택의 구조적 한계로 비용 부담, 의료·복지 연계 부족, 사회적 고립 등을 꼽고 있다. 앞으로 공공과 민간 모두에서 실버주택의 양적·질적 확대는 물론, 중산층을 위한 다양한 주거 모델 개발과 의료·복지 연계 강화, 법·제도 보완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령자가 감당 가능한 수준의 월세로 실버주택을 공급해 부유층 전용이라는 인식을 깨고, 부실 운영을 근절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며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해 세대 혼합형 모델(Mixed Generation Model)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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