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유럽연합(EU)과 영국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에 대한 신규 제재를 공식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에서 즉각적인 휴전 합의 도출에 실패한 지 하루 만에 나온 조처다.
EU와 영국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외교·국방장관회의를 열고 제17차 대(對)러시아 제재 패키지를 채택했다.
구체적으로는 서방이 시행 중인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회피하는 데 사용되는 이른바 '그림자 함대' 유조선 189척이 제재 명단에 올랐다. 그림자 함대란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운영하는 선박 네트워크로, 이들은 주로 AIS(자동식별시스템)를 끄고 이동하거나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원유의 출처를 숨기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이로써 EU의 제재를 받는 선박은 두 배가량 늘어 총 342척이 됐다. 그림자 함대 운영을 지원한 아랍에미리트(UAE)·튀르키예·홍콩 소재 기업들과 러시아의 주요 해운 보험사도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
러시아군에 드론·무기·탄약·장비·부품 등을 지원한 45개 이상의 러시아 기업과 개인도 제재 대상에 추가됐다.
러시아 에너지 기업인 수르구트네프테가스와 주요 러시아 석유 운송업체들도 제재 대상이 됐다.
EU는 개인 17명과 기관 28곳을 포함해 총 75개의 신규 대상을 제재 목록에 추가했다. 이들은 EU 내 자산이 동결되며 EU 시민과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지 못한다.
러시아 군산복합체를 상대로 이중용도 품목이나 첨단기술 관련 제품을 우회 수출한 법인 31곳도 제재 목록에 올랐다. 이들 가운데 세르비아·UAE·튀르키예·베트남·우즈베키스탄 등 제3국 소재 기업들이 포함됐다.
에너지 물질의 화학 전구체와 공작기계 예비 부품 등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행위도 제한된다.

영국 정부도 같은 날 러시아의 군사·에너지·금융 부분을 겨냥한 100여 건의 신규 제재를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 이스칸데르 미사일 공급망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고, 러시아 크렘린궁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정보 공작을 수행하는 소셜디자인에이전시(SDA) 소속 인사 14명이 제재 명단에 올랐다.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돕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외환거래소와 러시아 예금보험공사 등 46개 금융 관련 기관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EU와 영국의 신규 제재는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언급만 할 뿐 실질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EU와 영국은 이번 제재가 미국과의 공조하에 실시된다고 밝혔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푸틴과의 통화 이후 평화 협상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현시점에서는 추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현재 EU와 영국은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인 원유 판매를 더욱 옥죄기 위해 주요 7개국(G7)이 설정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현행 배럴당 60달러에서 더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상한선을 배럴당 50달러로 낮추자고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이 상한선을 배럴당 30달러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제재에 대해 유럽이 우크라이나와의 직접 대화를 막으려 한다고 비난했다.